사상으로 읽는 삼국지
야마구치 히사카즈 지음, 전종훈 옮김 / 이학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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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지금은 없어진 와우북에 올린 서평입니다. 원래 서평은 잘 안 썼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아닌 것이 너무 안타까워 쓰게된 리뷰입니다.

늘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누군가에게 알려줘야지 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서평을 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일부러 서평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와우북에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문열씨가 평역한 '소설 삼국지'를 비롯, 우리나라에서는 고고한 선비타입의 유비, 간악한 조조 라는 이분법에 근거한 삼국지를 주로 정석으로 알고 봐 왔습니다. 사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보다도 편파적으로 편집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삼국지 다이제스트 판들은 삼국지에 담긴 수많은 처세의 지혜를 모두 외면한 채 유교적 위선을 독자들에게 가르쳐왔습니다. 서민들에게 유교적 영웅의 현현을 보여줌으로써 유비, 제갈 량, 조조 등 주요 인물들을 주자학적 잣대에 맞추어 변형시켜버렸었지요. 그래서 그 소설은 삼국지가 원래 담고 있는 세상살이의 여러 면모를 잃은채 그저 하나의 삼류 영웅소설밖에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작가의 자질을 떠나서 어떤 소설가, 만화가 들이 펴낸 삼국지도 이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역사조차 곧잘 왜곡시키는 이 일본이란 나라에서 나온 책들 중에서는 오히려 삼국지의 일면을 철저히 파고 들어서 새로운 인물론, 또 소설과 실제 역사서들의 고증을 통한 그 이면읽기 등을 연구한 논문,서적 들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요즘엔 텍스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세계적인 유행인지, 그 붐을 타고 몇세기간의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는 이 삼국지 다시 보기 열풍은 역사학자, 훈고학자, 중국학자, 문학자, 만화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그 중에서 '만화'라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를 통해서 '조조 다시 읽기'에 불을 붙인 작품이 "창천항로"라면 이 책은 그보다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이 역사적 상황들을 기술하고 있는 사료의 정당성 검증 등 상당히 학구적인 활동을 통해서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이 취했던 전략의 실제 이유와, 실제 그 인물의 유형 분석을 새로이 하고 있습니다. 유교적 위선을 가장해야만 성공할 수 있었기에 그 길을 택한 어정쩡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유비. 마키아벨리즘 혹은 한비자적 통치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유능한 관료로서의 제갈 량. 유교에 반발한 위악적 인물 조조. 기량있는 자들을 밑에 불러들이는데 능숙했던 손권. 이들이 어떤 이유로 각각의 전략을 취했으며, 이 행동들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이들은 어찌하여 그들의 야망을 다 이루지 못 했는가. 를 매우 사실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얇은 책의 가격에 놀랐지만 그 돈 값을 충분히 하는 책입니다. 부담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두뇌의 오락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정도면 준수한 번역도 이 책 읽기를 즐겁게 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이학사의 다음 책들에도 많은 기대를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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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난 사실 그녀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모방범" 스타일의 추리소설은 좀 별로다. 너무 통속적이어서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나 할까.)

별로 읽을 생각이 없었던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건

비행기 안에서 읽을 뭔가는 있어야겠고 시간은 촉박한데, 정말 정말 다른 책이 없어서 고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몰랐던 이 작가의 매력에 깊이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오쿠다 히데오, 이사카 고타로 등과는 전혀 다른스타일의 유머와 인간애가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빈집털이"를 업으로 하고 있다. 동종업계 종사자인 부친의 정보망을 등에 업고 확실한 정보에 의존해서 흔적없이 프로페셔널하게 도둑질을 수행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갑자기 유산을 상속받은 독신 여자가 구입한 신흥주택을 털러 들어가다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당황해서 사소한 부상을 당한 그는 옆 집의 초등학생 쌍둥이에게 구조당한다. 구조의 대가로 그 쌍둥이는 "아버지가 되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부부싸움 끝에 서로 자기만 집을 나간 줄 알고 부모가 사라진 그 쌍둥이는,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으나 대외적으로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던 그는 쌍둥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기묘한 관계가 시작된다.

... 더이상은 스포일러겠지만, 이 소설의 재미는 스토리 자체가 아니라 주인공과 쌍둥이가 남에서, 대외위장용 부자관계로, 그리고 마음을 연 부자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섬세하면서도 유쾌하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1인칭 화자시점의 약점을 극복하고 끝까지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채로 보여주는 데 있다.

읽는 내내 재미있고, 가끔씩 마음이 찡하고, 손에 쥐는 순간부터 다 읽은 후에도 가끔 떠올릴 때마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완전 유쾌한 소설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또는 기차 안에서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에도 좋고 주말 오후에 즐거움을 위해서도 좋다.

다만...중간에 쉬었다 읽기엔 부적절하니 지하철 안에서 읽기는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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