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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파더 스텝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1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난 사실 그녀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모방범" 스타일의 추리소설은 좀 별로다. 너무 통속적이어서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나 할까.)
별로 읽을 생각이 없었던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건
비행기 안에서 읽을 뭔가는 있어야겠고 시간은 촉박한데, 정말 정말 다른 책이 없어서 고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몰랐던 이 작가의 매력에 깊이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오쿠다 히데오, 이사카 고타로 등과는 전혀 다른스타일의 유머와 인간애가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빈집털이"를 업으로 하고 있다. 동종업계 종사자인 부친의 정보망을 등에 업고 확실한 정보에 의존해서 흔적없이 프로페셔널하게 도둑질을 수행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갑자기 유산을 상속받은 독신 여자가 구입한 신흥주택을 털러 들어가다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당황해서 사소한 부상을 당한 그는 옆 집의 초등학생 쌍둥이에게 구조당한다. 구조의 대가로 그 쌍둥이는 "아버지가 되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부부싸움 끝에 서로 자기만 집을 나간 줄 알고 부모가 사라진 그 쌍둥이는,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으나 대외적으로 아버지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던 그는 쌍둥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기묘한 관계가 시작된다.
... 더이상은 스포일러겠지만, 이 소설의 재미는 스토리 자체가 아니라 주인공과 쌍둥이가 남에서, 대외위장용 부자관계로, 그리고 마음을 연 부자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섬세하면서도 유쾌하게,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1인칭 화자시점의 약점을 극복하고 끝까지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유머감각을 잃지 않은 채로 보여주는 데 있다.
읽는 내내 재미있고, 가끔씩 마음이 찡하고, 손에 쥐는 순간부터 다 읽은 후에도 가끔 떠올릴 때마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완전 유쾌한 소설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또는 기차 안에서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에도 좋고 주말 오후에 즐거움을 위해서도 좋다.
다만...중간에 쉬었다 읽기엔 부적절하니 지하철 안에서 읽기는 비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