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피플을 읽고
퍼플피플?인줄 알았다. 책표지도 공교롭게 보라색이여서. 자세히 보니 피프티피플이였다. fifty people 50명의 사람들?실제로 50명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등장인물도 50명 이상이다보니 소설 속 그들의 나이, 직업도 성향도 프리즘을 통과한 스펙트럼처럼 다양했다.(임상 실험을 아르바이트로 하는 사람, 레즈비언, 감옥에서 죄수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보건의, 시체운반사, 닥터헬기 조종사 등등) 50명의 사람들이 서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혀 유기적으로 얽혀 있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챕터 ‘그리고 사람들‘이란 곳에서 모두 등장한다. ˝도마뱀 조프와 친구들˝이란 클레이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영화관에서 화재가 나면서 이 모든 사람들이 화재 현장에서 탈출하면서 만나게 된다. 만나다는 표현이 서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치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이상의 표현은 못찾겠다. 피프티피플 중에 화재로 죽게 되는 이가 발생할까봐 나는 조마조마 했다. 조바심에 작가의 글을 좇아가면서 글을 읽었는데 ˝아무도 죽지 않았다. 유가족을 만들지 않았다.˝ 문장을 만났다. 다행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묘하게 세월호 사건과 오버랩 되었다. 작가는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세월호 참사이후 돌아본 역사와 교훈˝ 이란 책을 참고했다고 적어놓았다. 세월호는 작가의 글로 옮기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가족을 만들었다˝ 로 요약되는 사건이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읽은 유은이란 책도 화재로 언니를 잃게 되는 유은이의 성장 소설이였다. 소설과 뉴스에서 여러 가지 참사 현장을 접하면 나는 그리고 내 아이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 특히 내 아이는 저런 상황을 겪지 않고 살아야 할텐데 걱정이 앞선다.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세월호와 같은 참사를 겪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소설 속 50명의 인물중에서 나는 진선미의 인생이 마음에 들었다. 진선미는 피프티 피플 책에서 한 챕터도 차지 못하는 인물이다. 문우진 챕터에서 등장하는 진선미는 문우진의 두번째 아내이다. 진선미는 복잡하게 꼬인 일도 하하하 호탕한 웃음으로 넘어가게 두는 건지 특유의 키치를 발휘하여 위기를 극복하는지 모르나 그녀의 삶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하다. 단순 명료한 그녀의 삶이 좋다. 의뭉스럽지 않고 투명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또 하나의 삶, 하계범 챕터가 기억에 남는다. 하계범의 직업은 병원에서 환자들이 죽으면 얼굴을 덮고 장례식장까지 옮겨주는 일이다. 이것도 둘이 하던 것을 병원이 경영이 어려워지자 모두 계남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가족도 없고 배운거 없는 66세의 계남은 한 명을 더 뽑아달라고 병원에 요구할 수 없었다. 그래도 66세에 이만한 직장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계남은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친구는 병문안을 오라고 했고 계남은 빈말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친구가 왜 오지 않느냐고 해서 계남은 실제 외출을 허락받아야 했다. 힘겹게 외출을 나왔다. 다행히 그날은 날이 너무 좋았다. 버스 안에 햇빛이 가득하고 ˝깊이 잠들지는 않을 것이다. 감은 눈꺼풀에서 빛들이 춤을 춘다˝라고 작가가 계남의 외출을 묘사했다. 쪽방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66세 하계남의 삶에도 빛이 드리워져 춤을 추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쪽방촌에서 삶을 마감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잘사는 나라가 얼른 되길 빈다. 계남의 마지막 외출신과 더블어 기억에 남는 구절은 ˝타이밍이 적절해야 한다. 너무 빨리 가면 유족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시간을 방해하는게 되고. 너무 늦게 가더 유족들의 충격이 심해지기 때문에 몇분의 차이지만 사려 깊게 하려고 노력한다˝이다. 정말 이 직업군에서는 이런 배려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내 직업군에서 어떤 배려를 하고 있었을까?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까지 포착할 수 있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감사하다.
피프티피플은 특정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지만 모두다 주인공이기도 한 신기한 소설이다. 어릴 때 나는 작가를 꿈꿨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이름을 알리고 싶은 포부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꿈만 꿨지 습작하나 없는 몽상을 한 것이다. 아무튼 성공한 삶은 남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삶만이 인생을 주인공으로 살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왜 그렇게 거창한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런 가치관을 지금도 가지고 살아간다면 내 자신의 생이 너무 초라할 것 같다. 특별히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없지만 게으름과 무능함을 자기 합리화란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해야 할까? 피프티피플은 주목받지 못하는 나같은 소시민에게 위로가 되는 책같다. 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주목하지 못하지만 너로 인한 인생의 발자국은 너가 주인공인 멋진 소설이라고 말이다. 지금의 삶도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가면 모두 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살아가진 못하지만 누군가는 간직해줄 소설을 하나 쓰고 가는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이다. 다양한 직업군에게 생길만하고 생각해볼만한 일들을 세심한 문체로 풀어낸 작가의 시선이 놀랍다. 요즘 핫한 그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