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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미래 - 문화자본의 무한가치 세계유산 2.0
강상규 지음 / 가디언 / 2026년 7월
평점 :
문화자본의 무한가치, 세계유산 2.0
BTS가 광화문광장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평소 좋아하던 BTS의 공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수백 년의 시간을 간직한 광화문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K-POP 그룹이 공연한다니,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공연 당일에는 현장에 가지 못했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공연을 지켜봤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전 세계에서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놓인 광화문을 화면으로 보고 있으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BTS의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한 장면에 겹쳐지는 역사의 순간을 함께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그저 멋진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상규의 『과거의 미래』를 읽고 나니 그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과거의 미래』는 부제인 「문화자본의 무한가치, 세계유산 2.0」에서부터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저자는 문화유산을 단순히 과거에 존재했던 것을 잘 보존해 후대에 넘겨주는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에 축적된 문화적 가치를 현재의 문화와 연결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면서 미래의 가치로 확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BTS의 광화문 공연은 그 이야기를 이해하기 좋은 사례였다.
광화문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인 공간이다. 과거에는 궁궐의 정문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광장이 되었고, 때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특히 BTS의 공연에서는 아리랑과 한복 등 한국적인 요소가 현대적인 무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과거의 것을 그대로 꺼내놓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와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것이 '유산 2.0'이라 부르는 패러다임 전환의 첫 정의다. 유산 이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매일 다시 쓰는 미래를 향한 약속 이다. 그리고 그 약속의 첫 번째 책임자는 매일 광장을 걸어가는 우리 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문화재청이 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꾼 이야기, 1,000년 전 무속이 K-pop과 만난 데몬 헌터스 등.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라 어려울거라 생각했지만, 친숙한 사례를 예로 들기 때문에 술술 읽어갈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깊었던 이야기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였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전 세계가 놀랐던 것은 불길의 크기만이 아니었다. 복원을 위한 기부금이 엄청난 속도로 모였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화재 발생 하루 반 만에 재건을 위한 기부 약속이 약 10억 달러, 당시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규모에 이르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파리의 노트르담이 불탄다고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파리에 살지 않는 사람도 있고, 프랑스인이 아닌 사람도 있다. 노트르담에 가본 적조차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내 집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내 일자리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냈다.
왜였을까?
노트르담은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수백 년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예술과 이야기가 쌓여 있기 때문에 누구도 온전히 소유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가 만들어진다.
나는 이 부분이 문화유산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개인이 그 자산을 직접 소비 하거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그것이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가치를 인정하고 편익을 얻는다는 이론, 즉 비사용가치의 정체다. 이 개념의 렌즈를 통 해 바라볼 때, 노트르담의 그 뜨거웠던 24시간은 우연한 감정 적 충동이 아니라 인류가 물려받은 유산이 지닌 가장 본질적인 경제학적 법칙의 발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어떤 물건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는 보통 가격을 생각한다. 얼마에 살 수 있는지, 얼마에 팔 수 있는지,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효과를 만들어내는지처럼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에는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가치를 느끼는 것이 있다.
노트르담을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내가 돈을 많이 낸다고 해서 노트르담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곳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돈을 내놓았다.
소유할 수 없는 가치가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을 움직인 것이다.
2024년 복원이 마무리된 뒤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150개국에서 약 34만 명이 복원을 위해 기부했고, 모인 기부금은 8억 4,600만 유로에 달했다. 이 숫자를 보고 있으면 문화유산의 가치를 단순히 관광객 수나 관광 수입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문화유산을 위해서도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그곳에 가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미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문화유산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유산은 현재의 문화와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광화문에서 BTS의 공연을 보며 느꼈던 것도 바로 그런 장면이 아니었을까.
조선시대의 궁궐을 지키던 공간이 수백 년이 지난 뒤에는 K-POP 공연의 배경이 되고, 그 모습을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바라본다. 그 순간 광화문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주는 문화적 공간이 된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문화유산을 생각하면 ‘잘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부터 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것만이 문화유산을 지키는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화유산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노트르담은 사람들이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통해 그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했고, 광화문은 BTS를 만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무너질 뻔한 과거를 지키려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공간 위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전혀 다른 장면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과거에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갈 때 이어진다는 것.
그래서 제목이 『과거의 미래』인지도 모르겠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새로운 이야기와 연결하느냐에 따라 과거는 계속해서 다른 미래가 될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넷플릭스로 바라봤던 BTS의 광화문 공연도 단순히 한 번의 공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백 년 전의 공간과 지금의 음악이 만나고, 그 장면을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바라봤다.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현재와 만나 새로운 장면이 되는 순간.
아마 내가 그날 화면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감정도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독서편식클럽 1기를 통해 평소라면 쉽게 선택하지 않았을 주제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과거의 미래』를 읽고 나니 앞으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오래된 건물을 보며 단순히 ‘얼마나 오래됐을까?’를 생각하는 대신, ‘이곳에는 어떤 가치가 쌓여 있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그 가치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니까.
📚 도서 제공
이 글은 가디언 출판사 독서편식클럽 1기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