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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피치
이서현 지음 / 한끼 / 2026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벽에 매달려 있는 청춘들을 위한 이야기
『여름의 마지막 피치』
"재회의 벽을 오르면 헤어진 연인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한 문장이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재회의 벽'은 단순히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는 장소가 아니라, 각자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만나기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식증을 앓는 요리 유튜버, 슬럼프에 빠진 무명 성우, 신이 떠나버린 젊은 무당, 만년 2등인 국가대표 클라이머, 그리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클라이밍센터장까지.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벽 앞에 선다.
547명 중 2명. 성우의 시작에서 현수는 분명 그 2명 안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수의 자리는 없다. 제각각 재능을 빛내는 순간에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기분. 아무리 애써도 여기까지라고 누군가 말하는 기분.
가장 마음에 남은 인물은 무명 성우 현수였다.
547명의 지원자 중 단 두 명만 공채 최종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탈락하고, 아르바이트 성우를 전전하며 꿈을 이어 간다. 열심히 녹음한 작품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통째로 편집되기도 하고, 친구들은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계속 이 길을 가도 되는 걸까'를 고민한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까지 갔지만 결국 탈락한 경험이 있다. 최종까지 갔다는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불합격이라는 결과뿐이다. 그래서 나 역시 여러 번 '이 길이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래서 더욱 좋았던 것은 현수이야기의 결말이었다.
무명 성우는 갑자기 유명해지지 않는다. 작은 악당 역할 하나를 맡게 될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배역을 통해 자신이 왜 성우를 꿈꾸기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힘들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결심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불합격이 반복되면 어느새 목표는 '합격' 하나만 남게 된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이 길을 꿈꿨던 이유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굳이 클라이밍을 소재로 선택한 이유도 읽고 나서야 이해됐다.
클라이밍은 정상에 서 있는 순간보다 벽에 매달려 다음 홀드를 찾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벽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자신의 삶에 계속 매달려 있는 우리의 모습처럼 보였다. 포기하고 싶지만 손을 놓지 못하고, 또 한 번 손을 뻗어 다음 홀드를 향해 올라가는 모습 말이다.
제목 속 '피치(Pitch)' 역시 복숭아가 아니라 클라이밍 용어다. 긴 루트를 여러 구간으로 나눈 하나의 구간을 뜻한다.
인생도 하나의 거대한 완등이 아니라 수많은 피치를 하나씩 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떤 구간에서는 미끄러질 수도 있고 잠시 멈춰 설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다음 피치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 결국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다.
출판사에서 함께 보내주신 스티커로 책꾸를 하면서 표지를 다시 천천히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복숭아가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책을 읽고 나니 하늘색 배경과 클라이밍 홀드가 더 먼저 보였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표지가 다르게 보인다는 점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여름의 마지막 피치』는 거창한 성공담을 들려주는 소설이 아니다.
대신 지금도 벽에 매달린 채 자신의 다음 홀드를 찾고 있는 청춘들에게, 잊고 있던 처음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는 다정한 응원을 건네는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