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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은퇴를 앞둔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황망히 아내를 잃었으나 여전히 그녀와, 그녀로 의한 삶을 아픔과 그리움으로 살아내듯이 산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p.141) 것처럼, 우연한 상황들로 기억을 더듬고 생활을 다듬어 그의 이름의 유래처럼 정원을 가꾸듯 조금씩, 삶을 비로소 아름답게 만든다. 그 시간은 애나와 사이의 부모, 프랭키 보일, 주디스와 채운 지나간 시간과 오래된 기억들이 고요하지만 어느 때고 가볍고 순식간에 그리고 일제히 생생해진다. 풍경과 심리, 상황 묘사가 굉장히 실감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에테르와 같이 그렇게 혹은 아원자 상태라 적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지만 무엇인지는 알 수 밖에 없는‘ 그런 힘이 느껴진다. 에드 파파도풀로스, 비어트릭스 코언과 많은 시간 공유할 지금과 앞으로의 시간은 사이 못지않게 나 역시 다음 장면을 두근대며 기대하게 될 정도로 은퇴한 노교수, 외로운 독거 노인의 에너지 그 이상의 활력이 감탄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그의 이후 시간도 소소하고 생생하게 채워지겠구나, 안도하기도 했다. 어쩌면 마지막 단락, “바움가트너는 의식을 잃지 않았고 ……” 부터의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라는 것은 이대로 해피엔딩이거나 혹은 완전 다른 장르로 전환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장르가 되든 우리의 STB, 시모어 티컴세 바움가트너는 또 잘, 그만의 해결법으로 기꺼이 그와 그 주변을 잘 가꾸고 있겠지. 여기서든, 저, 위에서든.
좋은 문장이 굉장히 많았다. 폴 오스터의 책이니까 당연히 그러했겠으며, 마지막 작품이라 더 아껴 읽다보니 그랬을 수도 있고, 가제본으로 보는 책은 좀 더 책쟁이에 마음이 이입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꼭, 꽃이 있고 새의 소리나 인공의 어떤 소리가 적은 곳에서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