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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평점 :

몇 년 전 김지우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괜찮은 탐폰을 찾아 유튜브를 찾아 헤매다가였다. 생리대라는 한 가지 방법만을 고수하며 이제서야 대안을 찾아 나선 소극적인 나에 비해 그는 여러 가지 용품을 써보면서 적극적으로 몸의 불편감을 해소해 나가고 있었다. 그에게서 내 몸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특유의 기개가 느껴졌다. 말하자면 나는 김지우 작가를 여성 정체성으로 처음 알게 됐다. 비장애인의 흔한 특권적 무지함으로 장애인 여성의 월경에 대해서라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무례하게도 호기심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가 가진 장애인 정체성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구르님’이라는 닉네임은 휠체어 사용자가 ‘굴러서 이동한다’는 의미를 유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또 유튜브에는 휠체어를 테마로 한 콘텐츠가 주로 올라왔는데 매달 다른 주제로 ‘휠꾸(휠체어를 꾸미기)’를 하는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나 휠체어를 타고 찍는 각종 잡지 화보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화려하고 예쁜 시각적 요소에 눈길이 가기도 했지만 자신의 취약성을 온전히 드러내고 심지어 자기표현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가 나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읽다가 ‘누군가를 일깨우거나 반성하게 만드는 역할에는 신물이 난다’는 날카로운 비판에 뜨끔해서 또 반성(!)하기도 했다. 그래도 바라봄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를 알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에는 차곡차곡 레이어가 쌓인다. 소리도 없이, 소문도 없이.
이런 마음을 전제로 김지우 작가의 신간 <의심 없는 마음>을 의심 없이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여행기란다. 이런,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아니, 나는 여행 자체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타인이 여행으로 고생 끝에 얻은 낙이라든가 감동, 황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구르님의 여행기는 기대가 됐다. ‘오래오래 당기고 있었던 새총의 돌’같은 구르님이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양심을 챙겨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혐오의 악조건 속에서 세상을 상대로 약하지만 올곧은 칼을 휘둘러 악을 물리치고 블라블라.. 그런 드라마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최악의 비장애인이로군.
복잡한 심정으로 읽게 된 책을 읽은 감상을 말하자면 지금까지 읽었던 다른 여행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구르님도 일단 해보고, 어쩌다 발견하고, 스리슬쩍 배우고, 환상이 깨지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인간이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큰 틀에서는 비슷하니까. 그러나 여행의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휠체어였다. 그에게는 비장애인에게는 없는 200킬로그램짜리 거대한 휠체어가 있었다. ‘이동’은 모든 여행지에서 구르님을 압박한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형편없어 결국 애인인 루와 첫 다툼의 추억(?)을 안긴 파리부터 안전과 평온함으로 환대해 주다 마지막에 기차보다 높은 플랫폼을 선사하며 방심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준 스위스까지 그야말로 온통 지뢰밭투성이다. 그때마다 구르님의 휠체어에 슬쩍 함께 타고 여행 중이던 방구석 독자인 나도 같이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는 지금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특정 집단의 독선과 아집’이라고 일갈해버리는 정치인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 대체적으로 접근성이 좋다고 여기는 유럽 국가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변수나 돌발 상황 없이 물 흐르듯 여행을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런 기대가 순진하고 편협한 사대주의였을까. 대체로 기대에 부응하긴 했으나 더 많은 경우에서 기대를 배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고난과 박해 속에서 얻은 결과물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역시 휠체어의 오라를 무시할 수 없는 걸까. 구르님의 여행기는 조금 더 역동적이고,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복잡한 마음과 생각을 직관적이고 선명하게 표현하는 김지우 작가의 글에 반했기 때문이다. 여행 중 너무 힘이 들어 ‘차라리 장애인으로 특별 대우를 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때나 매 순간 동등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애인인 루에게 자신이 매력적인 연인이 아니라 그저 챙겨야 할 돌봄의 대상이 될까 봐 두려웠을 때, 평생을 걱정을 동력으로 살아온 엄마를 묘사하는 일이 ‘구릴 수밖에’ 없어서 좌절했을 때, 그래서 거꾸로 엄마를 돌볼 수 있는 타국에서 쓸모 있음이 주는 미묘한 만족감을 얻었을 때 그는 그냥 ‘그렇다’고 쓴다. 곁가지 친 수만 갈래의 마음들을 중심 가지만 남기고 가지치기해서 군더더기를 없애지 않고 흔들리고, 모순적이며 부끄럽다고 선언한다. 순순히 마음을 내놓는다. 그 투박함과 꾸밈없음에 매료되어 신이 나서 읽게 된다.
평생 거절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살아야 하는 삶,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는 삶, 도움을 줄 때의 행복보다 도움을 받을 때의 부담을 숙명처럼 지니고 살아야 하는 삶. ‘장애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기가 장애만을 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그에게 장애란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다. 그러니 장애를 의식하지 않고 이 책을 읽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거다. 그러나 적어도 장애를 생활로 읽게 만들어 줬다는 말은 하고 싶다. 장애인도 요리와 빨래, 설거지 등의 생활 노동과 서핑이나 목욕을 직접 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을 눈여겨 보고 기억할 수 있었다. 장애인의 참여를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다.
두 눈앞의 끝, 사뿐 넘어가 한계 밖의 trip, 짜릿하잖아.
녹이 슨 심장에 쉼 없이 피는 꿈 무모하대도 믿어 난
곧 잡힐 듯이 반짝이던 무언가
꼭 달릴수록 멀어져도 난 좋아*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사소한 성공의 모음집’이라고 겸손하게 자평했지만 사실 ‘성공’의 내용이 사소하지 않아 내심 부럽고 샘이 날 정도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선뜻 다가온 사람들’이 있었다. 기차 환승을 위해 휠체어를 옮겨주던 ‘무슈들’, 호주에서 만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잠꾸러기 집주인들, 융프라우의 미끄러운 얼음 터널을 비밀스럽게 통과시켜준 사람, 퀴어 축제에서 만난 다양한 존재들. 이 책을 사소하다고 말하지 못할 가장 거대한 이유이지 않을까. 이 성공을 발판 삼아 구르님이 당당하게 ‘장애인 권력’을 휘두르며 살았으면 좋겠다. 이미 경계 밖의 짜릿함을 알아버려 멈추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오르트구름, 윤하>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