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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현재를 기준으로 가늠하자면 나의 정치적 입장은 패배주의에 가깝다. 뉴스에 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가 나와도 정치는 저렇게 얼굴이 두꺼워야 하는 거지, 뻔뻔함과 정치생명은 비례하는 거였지,라고 혀를 차곤 그만이다. 그저 세상 일들에 조금 관심을 갖고 살았을 뿐 활동가처럼 산 것도 아닌데 세상이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자꾸만 회의감이 든다. 이대로 다 같이 망해버리자,라고 냉소하기도 한다. 비겁하고 졸렬한 태도다. 그렇다고 또 완전히 냉담해질 수 있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어서 그동안 경험했던 강렬한 역사적 성취에 기대 ‘변화는 더디 온다’는 문장을 새기며 산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무력감과 체념을 내면화한 상태다.
2024년 12월 계엄이 선포됐을 때, ‘설마’라는 감정을 끌어안고 밤을 지새웠던 것이 무색하게도 여러 정황상 그들이 꽤 진지하게 계엄을 도모했음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작은 일기>는 황정은 작가가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 사이에 있었던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과정을 목격하고 증언한 짧은 기록이다. 일기라고 하기엔 담고 있는 내용이 너무나 엄중해 긴장감과 안타까움, 답답함과 간절함을 번갈아가며 읽었다. 말과 달리 글은 휘발되지 않기에 정치적 입장을 담은 일기를 공개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다가 상식과 보편적 도덕을 얘기하는데 이렇게까지 몸을 사려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작가의 시선으로 온 국민을 관통했던 그날의 충격을 기록한 이 증언은 그만큼 무거웠다.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괴물 취급하는 건 쉬운 일이다.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때로 끔찍하게 느껴질지언정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다. 예전에 분노가 온몸에 가득 들어차 있을 때는 특정 집단의 생물학적 퇴장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잔인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때를 지나쳐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세상은 더 나쁜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다. 오히려 이제는 싸워야 할 혐오가 더 넓게 퍼져 간다. 그것에 막막한 기분이 들 때쯤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분노와 증오를 키우다 미움만 남는 사람이 되는 대신 미래에 ‘곱게 늙어서 더 징그러운 폭력’이 되지 않도록 ‘내게도 있는 싹’을 들여다본다. 사회에서 허용된 보편적 자격을 갖추고 있어 자동으로 갖게 되는 특권을 인식하려고 애쓴다. 말하자면 ‘몰라도 되는 일’들에 더 신경을 쓴다. 그렇게 나를 좀 멀리 두고 보는 연습을 한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목격’에 두고 산 지 꽤 되었다. 태어나 보고 듣고 겪는다. 이걸 하러 나는 여기에 왔다. 아주 작은 무수한 입자들로 흩어져 있다가 어느 날 인간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세상에 출현해, 기적적으로 출아해, 세상을 겪고 세상의 때가 묻은 채 다시 입자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을 관통한, 그리고 세상이 관통한 더러운 경험체로서.”(132p)
어느 때보다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고 선명했던 그 고통의 감정을 나눌 사람이 절실했다. 다소 맥이 빠진 상태지만 그래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 사람이 바로 황정은 작가여서 의미가 컸다. 그가 쓰는 글과 함께 늙어온 충실한 독자인 내게 <작은 일기>는 그 자체로 영광이었다. 몸으로 비집고 나오는 고통으로 ‘손상’되는 와중에도 끝내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책”(페르난두 페소아)을 써주어 고맙다.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고는 하나 나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희망이라고 말하면 금방 파사삭하고 부푼 마음이 가라앉을까 내색하지는 못하나 저자의 말처럼 ‘가능성을 믿는 마음’은 아무래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건 ‘세상이 관통한 더러운 경험체’로서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창비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