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일본 대중 문화 4
1. 쇼와 시대의 전시 총동원 체제의 시대적 배경
국가가 인간의 근로를 관리했던 시스템인 총동원 체제에 의해 운영되던 쇼와 시대는 본격적인 전쟁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태평양전쟁과 전시 총동원 체제는 전시법, 전시체제라는 시대적 비극을 낳았으며 대중문화가 꽃피었다고 평가되는 다이쇼 시대와는 반대로 대중문화의 침체를 낳는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당시 산적해 있는 문제 중 시급한 것으로 정치적 이슈가 된 것은 역시 여성의 참정권과 식민지 국민의 참정권, 국민의 보험과 보건교육, 노후 계획과 연결된 연금과 같은 민주복지사회의 요소들이다. 전쟁기에 이러한 것이 왜 필요했으며 왜 각료의 정권다툼에 끊임없이 주요한 이슈가 되었는가?
이는 전쟁에 국민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회 복지제도를 구현함으로써 천황의 이름만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정치, 사회적 요구이기도 하다. 국가를 위해 나가서 싸우는 국가방위의 역할을 국민들에게 부가시키고 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복지제도의 구현이 시대적 요구 사항이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일본은 그들의 적인 미국, 중국과 전쟁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세계공항에 부딪친 세계적 정세는 일본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와 같은 자원이 없는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선공격, 보다 많은 식민지 구축을 주 무기로 한 '파시즘'체제로 국가를 정비한다.
2. 평화헌법 제9조로 촉발된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
그들이 말하는 전후戰後란 제국헌법에 의해 운영되던 당시 사회를 '평화헌법'으로 재편성하고 새헌법에 맞는 전전과는 다른 시대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특히 평화헌법의 헌법 제9조는 주권이 천황에게서 국민에게로 옮겨졌다는 것과 전쟁포기와 비무장화로 상비군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바, 전쟁 책임에 대해 천황에게 면책을 주고 대신 신의 권자에서 천황을 끌어내리게(천황제를 명맥만이라도 유지시키는) 된다. 이는 현재까지도 천황제를 둘러싼 일본 사회의 우익화와 전쟁 가해국이면서도 피해국이라는 피해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는 첫번째 요인이 되고 있다.
패전을 공표(1945)하고 미군정체제에 돌입한 일본은 미국의 소비, 대중문화의 유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평화헌법에 기초한 비무장화는 그들이 전시 총동원 체제하에서 갖춰놓은 군수, 공업 라인을 공업, 산업화로 돌릴 수 있는 핫라인으로 적극 이용된다. 또한 천황의 인간선언으로 촉발된 사회 분위기는 한국전쟁특수를 맞아 전국민이 생산 라인에 돌입하는 적극적인 산업화의 길로 들어선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후 문화를 리드하는 것이 재벌의 해체를 통해 얻어낸 '기업'과 '관료'가 되면서 일본을 제조업의 왕국으로 바꾸어놓는다. 기업을 중심으로 한 문화의 형태를 보면 그들의 복지정책이 어떻게 실현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의 특징인 '종신고용제' '연공서열' '기업에 대한 애사심 강조' 등은 민주적인 분위와 맞물려 기업별 자치 노조를 결성하거나 고도성장기의 정치적 판도(자민당과 사회장의 대결)에도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전쟁특수와 맞물린 일본의 고도성장기 정책
여기서 잠깐, 한국전쟁은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한반도에서 터진 것임을 짚고 넘어가자. 한국전쟁으로 일본 사회에 징병제에 대한 부활 논의가 제기되는 가운데 한 발 앞서 미군정은 당시 냉전체제에 대한 위기감으로 일본 통치 방법을 민주화, 비무장화에서 부국화, 재무장화로 바꾸게 된다. 이러한 역코스는 평화헌법의 기조를 제안한 맥아더를 중심으로 표면화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자위대'이다. 자위대는 모병제로 월급을 받는 군인으로 구성된 군대로 미군의 주문하에 한국전쟁으로 집중되는 냉전 위협으로부터 일본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지켜내기 위한 정책의 집행이었다. 미국은 냉전체제에서 일본을 지키기 위해 민주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평화헌법의 내용을 깨뜨린 것이다. (이것이 일본 사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나중에)
이러한 전쟁특수와 비무장화로 상대적으로 산업화에 집중된 정책으로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루는 발판을 마련한다. 먹는 것에서 출발, 전쟁 전 수준으로 회귀하는 것을 목표로한 전후 1940년대로부터 일본은 1950, 1960년대에는 이케다내각의 '국민소득 배증계획'에 따라 '소비혁명' 내구소배재의 보급에 주력하게 된다. 당시는 일본 경제에 있어 가장 경기가 좋다는 뜻의 '진무경기' 시기로 올림픽으로 호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량소비시대로 가는 기반이 형성된다.
>>이쉬, 한 나라의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 무에 이리 거쳐야 할 것이 많단 말인가. 또 이름은 얼마나 헥깔리고. 머리 터지겠다. 정치권으로 넘어가면 헥헥 그게 그거 같고 이렇게라도 정리를 안 하면 돌아가시겠다. 푹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