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일본 대중 문화 7

1.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성공비결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홍길동>. 1967년 상영 나흘 만에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이후 <호피와 차돌바위>, <손오공>, <황금철인> 등이 1968년에 상영되었지만 1971년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끝으로 제1차 애니메이션 역사는 끝난다. 물론 1976년 <로보트 태권 V>가 등장해 잠깐 붐이 일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다면 일본은 어떤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본격적인 역사를 <백사전>이 등장한 1958년으로 본다면 우리도 그리 뒤지지 않은 것 아닌가?

한국 애니메이션이 중간에 단절되고 지속되지 못한 것으로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지원이 현재 애니메이션의 침체를 살릴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일본의 경우 80년대 영상물의 침체기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독립프로덕션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 죽었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자본을 끌어모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자본을 생산해낼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 일본은 정부의 지원 없이 자립에 성공했다. 상황이 열악한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여기서 거론되는 것이 그들만의 노하우다.

첫째, 일본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방식과 뱅크 시스템을 택하였다. 이는 텔레비젼 방영분의 경우(1회 30분) 1초에 24장이라는 디즈니영화와는 달리 1초에 2~3장 정도의 그림만을 사용하는 절약형 방식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인건비가 저렴한 우리나라에 동화와 채색을 하청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불어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 뱅크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재활용인 셈인데 화면상 같은 장면이 나오도록 줄거리 배치를 고려하는 것이 이것에 속한다. 그렇다고 작품의 질이 떨어졌느냐? 물론 정교한 장면은 포기하는 대신 다른 재미거리를 포진해놓았다.(뒷부분 작품에서 다르어질 것이다)

둘째, 애니메이션만으로는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 타입 업Type up 방식이다. 비디오, 비디오 CD, 디스크, 케이블, 지역민방 등 2차 배급망을 구축함과 동시에 TV용 제작물을 재활용해 극장판을 만들어 개봉함으로써 수익을 추가시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타이 업Tie up 방식을 채택해 제휴 업체를 확보하고 부가산업을 재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는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으며 같은 작품의 애니메이션보다 한 달 정도 일찍 연재를 시작하는 잡지(<소년 점프>)와 단행본 만화의 시장을 활성화시킨다.

셋째, 세계적인 캐랙터 기업인 반다이에서 볼 수 있듯 방영된 애니메이션을 장난감을 통해 다시 선보이는 캐릭터 비즈니스를 꼽을 수 있다. 다분히 기업적 상술로 재탕되는 악폐를 낳기도 하였지만 반다이는 여전히 뻔한 스토리의 슈퍼 히어로 시리즈로 20년이 넘도록 같은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다.

2. 일본 애니메이션이 발달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배경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이면에는 위와 같은 살아남으려는 노력 이외에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뿌리를 들 수 있다. 일본인들이 무엇을 보고 재미와 오락을 느꼈는가를 알 수 있는 에도시대의 문화를 살펴보자.

우선 분라쿠를 보자. 이는 서양에서는 중세 이후 인형극이 아동물로 전락한 데 반해 유독 일본에서는 현재까지도 그들의 전통을 고수란히 이어가는 성인용 인형극이다. 분라쿠좌에서 상연하는 분라쿠는 영웅의 일대기를 다룬 시대물과 연애를 다루는 세와물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당시 민중들은 이러한 상연극을 통해 지방 곳곳의 숨은 이야기와 시대적인 문제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뿐 아니라 그들을 울고 웃기는 대중물로 자리잡으면서 인형을 통한 무생물의 움직임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는 그들만의 특징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그림을 영상으로 보는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는데 이는 두루마리 그림에 글과 그림이 함께 들어간 에마끼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겐지모노가타리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의 겐지모노가타리에마끼로 유통되었으니 만화의 초기 형태가 이미 상대에서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에마끼와 더불어 본격적인 만화 그림의 원형이 되는 우키요에의 발달과 향유는 그들의 만화가 현대적인 산물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또한 고급의 문화와 대치되는 대중의 문화로 우키요에가 받아들여지고 발전한 것에서 보여지듯 우리가 흔히 저급/저질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문화 저변에는 대중의 욕구와 욕망, 그들의 이야기와 기호를 적극 수용하여 보급시킨 우키요에와 같은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 만화의 기본 바탕이 되는 대중이 선호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유통시킬 수 있는 그들의 전통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전통의 맥락 이외에도 전쟁 이후 많은 화가들이 만화의 세계(영상물도 마찬가지)에 투신하였다는 점도 그들의 만화를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육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 지금 잠깐 든 생각 :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장난감 사장이 될 테다. 똑같은 걸로 20년을 우려먹는 걸 보면 안 될 것도 없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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