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일본 근대문학의 흐름 1

1. 근대문학의 여명

일본의 근대는 메이지유신에서부터 태평양전쟁(1868~1945년)의 패전까지를 가리킨다. 이는 갑오경장을 시초로 8.15 해방까지를 근대라고 보는 우리의 근대 구분과 대략 같은 궤에 있다. 메이로쿠샤(明六社, 모리 아리노리가 중심이 되어 1873년 결성된 계몽된 학술 단체. 후쿠자와 유키치, 니시 아마네, 가토 히로유키, 쓰다 마마치 등이 핵심 인물이며 서유럽 문명 도입과 근대화의 필요성을 계몽하고 자유민권운동을 전개해나갔다.)는 근대화의 완성을 위해 계몽을 주장했고 이는 부국강병의 국가 이데올로기 구현으로 이어진다. 초기 계몽사상의 핵심은 평등주의, 공리주의, 자유주의로 대변된다. 여성, 아이, 상인들 사이 형성된 세속 문학이었던 전근대 문학양식이었던 게사쿠(戯作, 장난삼아 지은 작품이라는 뜻으로 샤레본西落本, 곳케이본, 기뵤시黃表紙, 고칸合券, 요미혼, 닌조본人情本 등이 이에 속한다.)는 공리주의와 실용주의 덕목에 밀려 무용한 것으로 냉대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재빨리 부응한 게사쿠 작가로 가나가키 로분仮名垣魯文이 있다. 게사쿠 작가로는 나가키 로분(1829~1894)이 대표적이며 그는 사양 문물을 소개한 『서양만유』, 쇠고기 요리점에서 서민들의 입을 빌어 개화기 풍속을 풍자한 『책상다리 냄비』와 같은 글을 썼으며 이후 케사쿠 작가들은 신문의 연재를 맡기도 하였다.

『메이지 문학사』를 쓴 나카무라 미츠오는 "메이지라고 하는 시대는 서양의 영향으로 일본사회 전체가 엄청나게 바뀐 시대"라고 하였는데 문화 면에서 이를 반영하는 것이 번역물이다. 입신출세 청년의 이야기인 새무얼 스마일스 『자조론』(1871), 피터 팔리 『서양야화』(1874), 기조 『유럽 문명사』(1874) 등은 근대국가와 문명의 성립과정, 그리고 그 당위성을 역설하며 계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당시 번역된 문학작품으로는 에드워드 리튼의 『어네스트 맬트라버스』(1878),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1878), 『달나라 여행』(1878),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872),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880), 알렉상드르 뒤마의 『바스티유 탈취』(1882), 『어떤 의사의 회상』(1882), 폴 베르니에의 『허무당 퇴치기당』(1882), 디즈레 일리의 『크닝스비』(1884) 등이 있다. 이는 과학에 기초한 문명의 경이, 강점, 서양 법률 과제, 생활상 등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소설을 여성이나 아이들, 상인들의 오락거리로 생각하던 당시 문인,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메이지유신 이전 20년을 근대 이식 과도기라고 하는데 이때 문학의 양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정치소설의 등장이다. 1880년대는 자유당, 입헌재헌당이 창립되고 정치활동의 연장선으로 정치소설이 쓰여졌다. 대표적인 것이 민권운동의 승리 과정을 다룬 『설중매』(1886)이며 스에히로 데츠초는 속편 『화간앵』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두 번째는 개진당으로 대표되는 당시 국권운동의 연장으로 야노 류케이의 『경국미당』(1883~1884)이 있다. 그리스 약소국인 테베가 스파르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국권회복'을 역설하는 정치 슬로건이 된다. 도카이 산시는 『기인이 기우』(1885~1897)에서 강대국들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한다. 셋째는 부국강병을 내세운 '계몽'이다. 이는 당시 여권신장과 맞물려 있으며 사카자키 시란의 『미인국』(1889)을 탄생시키게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시 주류는 역시 정치소설이며 정치소설의 효시라 평가받는 도다 긴도의 『정해파란』(1880) 이후 10년 동안 약 220편의 정치소설이 출간되었음은 이를 반영한다.

1890년대의 특징은 이러한 배경하에서 정치소설뿐만이 아니라 순수문학의 번역이 활발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호프만, 빅토르 위고, 알프레드 테니슨, 알퐁스 도데, 레오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 투르게네프와 같은 세계문학 전집에 속해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활발하게 번역되었다. 이는 지식인, 엘리트층의 소설 창작 의욕을 자극하고 통속적이라고 던져놓았던 소설의 주제에 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메이지유신 이후 20년간을 흔히 "화혼한재和魂漢才에서 화혼양재和魂洋才의 문화 이데올로기로 궤도 수정하는 과도기"라고 하는데 고바야시 히데오는 좀더 정확히 말해 "일본의 근대화는 서양화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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