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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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제목에 끌렸고, 마지막엔 단편 소설만이 가지는 잔잔하지만 주옥같은 메시지들을 가슴에 담았다. 로런스 블록과 다수의 소설가들이 에드워드 호퍼라는 화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서문을 읽고나서 부터 작품을 볼 때, 호퍼의 그림을 먼저 깊이 응시하며 감상했다. 그리고 소설을 읽어내려 갔다. 모든 단편 소설마다 호퍼 작품의 영혼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 호퍼라는 작가의 그림과 소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서 아마도 내가 만난 단편집 중 가장 몰입해서 본 책으로, 단편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짧은 문장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단편 소설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생각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소재들이 참신했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동기가 되었다. 때로는 뜨겁게 분노하고, 때로는 차갑게 냉정하고, 그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관찰을 통해 통찰하게 되었다. 특히 그 시대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둔 듯한 몇편의 소설을 통해 독립된, 혹은 성공한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구가 몰아치기도 했다. 첫 편 메건 애벗의 [누드쇼], 마이클 코널리 [밤을 새우는 사람들], 조너선 샌틀로퍼 [밤의 창문], 저스틴 스콧 [햇빛 속의 여인], 마지막 로런스 블록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까지 여성들의 직업과 삶의 풍경들이 지극히 화려하고 행복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음에 씁쓸했지만, 씁쓸하고 절망적인 어둠의 삶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순간의 감정들이 가슴에 콕 박혔던 감정들이 기억에 남는다. 단편 소설에 매력을 느껴보고 싶거나, 혹은 여성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단편 소설집 중엔 인생작 한권이라 표현해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책이었고, 에드워드 호퍼라는 화가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된 주옥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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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신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리지 않고 노트에 글을 쓰고 계시네요." "화가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죠. 작가라면 더 좋겠고요. 언젠가는." 그녀의 나이가 겨우 스물셋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작가로 성공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러니까 작가인데 그림을 보러 오셨군요." 그가 말했다. - P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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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따라가볼래요." 그녀가 힐을 신고 강인한 두 다리를 창틀 너머로 넘기고는 모래 위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본 광경이 너무 좋아서, 그녀의 모습이 좋아서, 그녀의 대범함이 좋아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차림으로 나왔다간 감기 들어요." "햇살이 따스해요."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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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그녀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올테면 오라지. 그때쯤 그들은 푸에르토모렐로스의 집에, 두 사람 중 누구의 이름으로도 계약하지 않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그 집에 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희생이다. 그리고 그녀는 늘 멕시코가 좋았다. "다 괜찮을 거야." 로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한다. 시체 없이, 그들이 찾아서 신분을 확인할 여자 없이, 유죄를 선고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심원들이 부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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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보면서 다른 그림 작품도 보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왠지 모르게 그의 그림은 쓸쓸하고도 공허한 느낌이 있다. 따뜻한 색감일지라도 온기가 채워지지 않은듯한 느낌. 그에 비해 로퍼의 그림은 담담하고 담백하다. 외로운 느낌보다, 현실적인 인간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일까 호퍼의 책을 읽다보니, 작품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까지 전시한다고 하니 가볼 예정이다. 뭔가 책속의 이야기를 알고 가면 더 알차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아마도 이번을 계기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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