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블로그에만 쓰고 못 올렸던 독후감, 다시 올리기.
#1. 스토너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는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어렴풋이 깨달은 아버지 덕에 대학에 진학한다. 평생 논과 밭을 갈고 농사만 짓다 죽은 무뚝뚝한 그의 아버지에게도 배움에 대한 호기심과 아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런 자신의 호기심 혹은 열정을, 아들을 통해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그의 만족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불행한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 같다. 물론 타인의 시선으로 본다면.
윌리엄 스토너가 태어나 공부하고, 교수의 삶을 살다가 죽는 내용을 그린 <스토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그의 삶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의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완전히 같을 순 없지만 그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할 수도 있고, 그의 삶의 태도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해 가능한 범주에 속한 사람이다. 소설 속의 사람이지만 어딘가에서 본 것만 같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나는 <스토너>가 다름 아닌 '위안의 문학'으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작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는 걸 보면, 내 이런 관점도 그냥 내 자신의 감상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나 또한 <스토너>에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고, '그래, 틀리지 않았어. 틀린 삶이란 없어!' 같은 자신감을 얻었지만... 이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때문에 적어도 그것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말았다.
#2. 어느 지방대 시간강사 스토너
이 책의 글쓴이는 나와 동갑. 자기가 배우는 것이 좋아서, 누군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준 것 같아서 학문 탐구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말하는 걸 깜박했는데,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익명을 쓰고 있지만 실화이다.) 집의 지원을 바라기 어려워서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어찌어찌 해결될 것 같았던 수업료나 생활비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석박사 과정을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에,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거기에서 보람을 찾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책만 읽고 끝냈다면, 그 지점에 많은 안도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책을 덮고 나면, "잘 됐겠지 뭐, 열심히 했으니까. 훌륭한 교수님이 되었을 거야." 하고 편했을지도. 하지만 우리의 대한민국 사회는 저자의 정체를 기어이 찾아냈다. 내가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나는 신문기사를 통해 저자가 '괘씸죄'로 인해 대학을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더는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람의 삶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보다 과연 그 지잡대가 어디인지, 다른 동료들의 평판이 어땠는지 등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고(나 또한 그놈에 군대 다녀왔다고, 언제나 못 버티는 사람이나 왕따에 대해 일단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지는 않는지 먼저 생각하는 꼰대 기질이 생겼다.) 인분 교수급의 사건이 아니라 그냥 시시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예상대로의 전개였지만 나는 새삼 충격을 받고, 책을 더 읽지 않았다. 우울해지기 싫어서.
#3. 현실과 이상. 아름다운 것은...
결국 이 책을 다 읽긴 했다. 책을 쓰면서 이런저런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글쓴이는 끝까지 사랑하고 싶었는지, 쉽게 사회가 밉다고, 대학이 밉다고, 치사한 인간들이 싫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들 이런 상황이니까 이해한다... 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게 굉장히 슬프다. 노력을 해서 뭔가를 얻는 기쁨을 누리는 것에 인색한 사회가, 그 과정에서 겪는 불필요하고 인간적인 비애까지 고스란히 한 사람, 그것도 20대를 갓 벗어난 30대 젊은이에게 책임을 지우는 우리 사회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암묵적인 룰을 깨트렸다는 이유로 청춘을 바친 대학을 떠나야 한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가. 그렇게 오랜 기간 땅 속을 버틴 매미인데, 너에게는 여름을 줄 수 없다. 그리고 이젠 땅 속도, 나무도 허락하지 않겠다, 해버리면.
너무 많은 감정을 할애할 수는 없다. 나 또한 불안감을 떠안고 삶을 이어가야 하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니까.
글쓴이가 새로운 길을 잘 찾아서, 꼭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지금도 대학에서 학문의 길을 힘겹게 걷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있을 것이고, 모두가 스토너의 삶처럼 항상 행복하진 않지만 나름의 성공을 이루는 그런 세상으로 여기며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청춘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법인데, 아픈 것이 청춘이란다.
변태같은 소리다.
청춘은 너무도 짧고, 그 순간을 아름답게 보내야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내 청춘의 아름다움이 사그라질 때, 주위의 수많은 청춘의 따스한 볕을 쬐며 그 덕을 보면서 사는 거다.
이 땅의 꼰대들은, 아직도 청춘인 줄 안다. 그래서, 점점 빛이 약해지는 젊은 태양들을 보고도 위기감을 느끼질 않는다.
현실의 이야기는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에 '실패'를 다룬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소중하다.
내가 안심하고, 망각해버리고, 또 다른 사람의 아픔에 무감각해진다면, 그렇게 늙어버린다면... 나는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홀로 추울 것이다.
사회와 대학, 세대 간의 착취와 경쟁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지친 요즘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려주는 정도의 여유라도 각자에게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약한 소리를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