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안녕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8
구보데라 다케히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가와카미 미에코의 <헤븐>을 읽을 때도 느꼈던 조금 비슷한 감정을 이 책에서도 느꼈다.

 

 타락해가는 세상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지켜나가는 순수함은 고귀함을 느끼게 해 주지만, 이 두 작품에서는 아니다. 그저 순수할 뿐인 주인공들이 어쩔 수 없이 머물러 있는 모습은 답답함을 불러 일으킨다. 보통 겪을 수 있는 성장통 이상의 아픔이 공감을 느끼는 이상의 당혹감을 안겨준다.

 

 이 책의 주인공인 사토루는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기로 마음 먹는다. 친구들의 집을 매일 순찰 돌면서 그들은 지키는 기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단련한다. 필요한 지식은 도서관에서 필요한 돈은 케이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는다. 점점 멀어져가는 친구들에게 느껴지는 소외감을 고독하게 받아들이면서 소극적이지만 터프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토루를 보고 있으면 왠지 조마조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선택한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도 뻔한 결말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모두 대학으로 직장으로 떠날 것이며, 아파트 단지를 떠날 수 없는 사토루에게 사랑하는 것도 가정을 꾸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의 삶이 그의 고집으로 인한 망가짐이라면 비난이라도 할 수 있을테지만 낫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사토루의 세계 좁은 아파트 단지 내로 한정지어 버린터라 측은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는다는 것이 못내 불쾌한 것은, 실제로 내 삶이 그와 다를바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뒤쳐진다는 느낌 혹은 모두와 어긋난 길에서 어정쩡하게 주저 앉아 있다는 느낌을 애써 무시해보려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토루의 필사적이면서도 강인한 삶의 방식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을 느꼈다. 무너져버리는 나약한 인간상인 소노다 덕에 화가 날 정도로 나는 작가가 원망스러웠다.

 

 단단한 알껍질 속에서 커지는 몸을 구겨가면서 살아가는 청춘.

 그 몸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작은 세계.

 

 결국 알을 깨고 나갔을 때, 그 밖은 어떤 모습일까.

 추운 겨울? 뜨거운 여름? 혹은 별이 아름다운 어느 맑은 날 밤?

 움츠렸던 몸을 펴고 목마름에 다다른 샘에서 문득 만난 내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어떤 동물의 알이었을까...

 

 의도하지 않게 청춘을 누리고 있는 내게, 언제나 타인의 성장통은

 열리지 않는 문을 양쪽에서 미친듯이 두드리는 듯한 답답함을 안겨준다.

 이 책은 나에게

 현실성 없이 여겨질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지만

 현실을 도피하려던 나를 불러 세우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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