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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오베라는 남자'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불안한 사람들' -
예리한 문제 인식과 얼기설기 엮어내는 스토리텔링, 특유의 까칠한 유모까지 그의 매력은 여전하다.
비극의 시작은 모두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다.
은행에 돈이 있을 거라고 단정했고,
주차 단속원을 경찰로 오해했고,
우편배달부를 경찰로 착각했을 뿐이다.
"현금 없는 은행을 털려던 은행 강도의 우발적 인질극"
현금 없는 은행을 털려던 어리바리한 은행 강도와 8명의 인질들, 그리고 경찰들 다양한 인물들은 각자의 걱정과 불안,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작가는 금융 위기, 부동산 투기, 소수자, 노인, 동성애, 우울과 자살 등 현대 사회에의 다양한 문제를 언급한다. 어른이 되면 저절로 능숙하고 여유 있게, 즉 어른답게 이런 문제들을 직면하고 해결하게 되는 줄 알았다. 어른으로 살아온 세월이 아무리 길어져도 막막하고 어려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것이 끔찍한 이유는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앞으로는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세상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공과금을 납부하고, 치실을 쓰고 회의에 늦지 않고, 줄을 서고 서식을 작성하고, 케이블과 씨름하고 가구를 조립하고, 자동차 타이머를 교체하고 전화 요금을 내고 커피 머신을 끄고 아이들 수영 수업을 잊지 않고 신청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일상이 우리 머리 위에 '잊어버리지 마!'와 '잘 챙겨!'로 이루어진 폭탄을 새롭게 투하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면 또 다른 폭탄이 위에서 쏟아질 것이기에, 우리는 여유롭게 생각하거나 숨을 돌리지 않고 그냥 일어나서 그 산더미를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회사나 학부모 간담회나 길거리에서 가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남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것 같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는 척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p74
"누구나 어렸을 때는 얼른 어른이 돼서 모든 걸 직접 결정하고 싶어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게 가장 힘든 부분임을 깨닫는다. 항상 의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어느 당에 투표하고 어떤 벽지를 좋아하며 성적 취향이 어떻게 되고 무슨 맛 요구르트가 자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낼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어른이 되면 시종일관 시시때때로 선택하고 선택을 당해야 한다." p268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서툴고 나약한 어른들, 야크, 짐, 사라, 로게르, 안나레나, 로, 율리아, 레나르트, 에스텔, 부동산 중개업자, 나디아, 은행 강도의 사연이 펼쳐진다. 미숙하고 허점 투성이인 삶이지만 그들의 사연은 애틋하고 진실되어 서로에게 따듯한 온기가 되어준다. 결국 작가는 서로가 "삶의 다리"가 되어 준다는 연결과 관계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심지어 사람조차 바꿀 수 없을 때도 많지. 조금씩 천천히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도우면 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면서. 최선을 다해. 그런 다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긍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게." p293
남편과 부인,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관계에서의 애환, 나이를 먹어간다는 노년을 향한 단상은 전작인 '오베라는 남자'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깊은 잔상으로 남는다. 모두들 완벽한 부모가 되기 위해서,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 위해서, 멋진 노인이 되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매 순간 실수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실수를 "잘"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편이 현명한지도 모른다.
"흔히 인간의 성격은 경험의 총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과거가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저지른 실수들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선택,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전부라고 말이다. p462
소소한 반전과 아기자기한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다. 다만 헤픈 해피 엔딩이 다소 황당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내가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황당함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는 어른도 '순진한 해피 엔딩의 동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v 다산책방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