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시골 의사 책세상 세계문학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종대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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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톨레도 전망대에서 터덜터덜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느꼈던 충만함의 전율은 현재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어떤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나라는 존재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복귀하고 나니 존재 본연의 가치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또 다른 진실에 맞딱뜨린다. 인간이란 복잡다단하며 모순 덩어리가 아니던가. 그렇다. 자존감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고작 자존감 하나로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조차 인간의 삶 전체에서 조망하면 단면일 뿐이다. 이를 간과하면 자존감은 현실 회피를 위한 자기 위안으로 전락한다. 

우리에게는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받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쓸모 있는 존재라고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와 가정 안에서 경제적 기여를 하는 능력있는 존재라는 확신과 신념, 이를 기반으로 오고 가는 신뢰와 사랑에 대한 욕망에 자유로울 수 없다. 잔인하지만 쓰임이 있어야 존재의 가치가 완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을 상실한 인간을 카프카는 바퀴벌레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묘사한다. 냉철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런 설정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하다. 모순적인 인간 본성에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통찰이다. ‘너로 충분하다.’는 위로의 내용이 넘치는 서점가에 널려있는 책들은 어쩌면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조별 과제를 할 때 꼭 한 명씩은 있던 ‘무임승차’하는 사람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던 사람도 있었지만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무임승차를 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그런 사람이 내가 될때도 있었다. 겉보기에는 참여를 했지만 실제적인 기여도가 무의미할때면 존재감이 없어지는거 같아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잔인하지만 ‘능력의 부재’는 ‘존재의 상실’을 부른다. 

현재 새로운 직장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이 고되고 힘들지만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키워 나의 쓰임을 연장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온갖 상전 수전 공중전을 겪지만 그 속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부족한 부분은 성장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쓰임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은 또 다른 차원에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게 한다. 주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확신하는 자기 효능감은 단지 존재로만 채워지지 않는 부족한 마음을 채워준다. 

그래서 카프카가 그려낸 주인공 잠자의 변신은 모순적이며 양가적인 우리네 본성에 직면하게 한다. 진실은 숭고하지만 그만큼 잔인하기도 하다. 과연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쓰임을 실현할 수 있을까. 가족의 부양을 책임 지던 잠자는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가족의 짐짝이 되어버린다. 잠자라는 존재의 변화와 그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의 변화, 이 두 축이 교차되는 지점에는 냉혹함만 남아있다. 한 평생 뼈빠지게 노동을 하며 우리네를 먹여살렸지만 퇴직 후에는 삼식이로 전락하는 가장들, 번듯한 대학 나오고도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 육아와 가사로 단절된 경력 때문에 경제적 능력을 되찾지 못하는 주부들, 의욕과 의지는 충만하지만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사회적 장벽 앞에 막혀버린 소외된 이들이 겪는 냉혹함과 무엇이 다를까. 

잔혹한 진실을 예리한 통찰로 꿰뚫고 불편한 심리를 예민한 감성으로 인지한 작가 카프카, 이전에는 그의 작품이 어렵고 난해하며 기괴하다고 느꼈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며 그의 순수함을 보았다. 혼탁한 생의 모습은 유리같이 여리고 맑은 영혼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을 테다. 살고자 펜을 들어 활자를 적어내려갔을 카프카의 심정에 공감과 연민을 느끼며 그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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