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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 니체와 함께하는 철학 산책
장석주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5월
평점 :
“거듭 말하지만, 환자이자 의사이고, 유럽의 붓다이자 그를 따르는 수행자인 니체에게서 나는 웃는 법, 춤추는 법,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고향을 떠나 사는 법, 고독을 견디는 법, 병이라는 불안과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는 법, 낙타처럼 순응하는 길을 거부하고 사자처럼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 내면에 혼돈을 품고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놀이 속에서 삶을 긍정하고 기쁨을 얻는 법을 배웠다.” p15
장석주 작가는 서문에서 니체를 통해 삶을 배웠노라 고백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어빈 얄롬의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등 니체의 철학 사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종종 읽어왔지만 나는 무엇을 얻었고, 왜 읽었던가? 평소 좋아하던 작가가 니체를 자주 언급해서 생긴 호기심으로 혹은 독서를 즐겨 하는 사람은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와 허세로 접근한 것이 아니었을까. 니체의 철학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야 작품 해석에 도움이 될 거 같았다. 반면 열아홉 어린 나이에 처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작가는 벅찬 환희를 느꼈고, 니체가 뱉어낸 활자를 자신의 생에 투여한다. 지식으로 멈추지 않고, 삶으로 끌고 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지혜로 녹여낸다. 나는 책 속의 언어로 니체를 알았다면, 작가는 삶에서 실체를 깨달으면서 니체의 철학을 살아낸 것이다.
"책벌레가 되지 말라. 책을 뒤적거리지 않으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 그는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독서가에 불과하다. 책벌레는 박학다식하지만 자기 고유의 사상은 만들지 못한다. 위대하고 위험한 사상은 독서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결정하고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 p160
니체는 발언은 발칙하다 못해 위험하다. 책벌레가 되지 말라는 속뜻은 기존의 관념을 숭배하지 말고 스스로 사유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일 테다. 니체는 어제의 역사, 전통과 관습, 종교와 신, 국가와 도덕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명령에 순응하는 낙타의 정신보다는 기존 가치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사자의 정신을 더 높게 치부한다. 규범과 규칙, 질서와 도덕에서 당위 하는 '해야 한다'의 늪에서 나와 자유가 당위 하는 '소망한다'로 전환할 수 있는 정신의 힘을 용맹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니체는 사자의 용맹함보다 더 높고 숭고한 정신을 어린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찾는다. 세상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순수함, 자신만의 기준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인 것이다.
아모르파티,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파티는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 어구이다. 흔히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고 한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삶은 우리에게 쉽게 행복과 성공, 사랑을 선물하지 않는다. 모든 행복에는 슬픔과 아픔이, 모든 성공에는 좌절과 실망을, 모든 사랑에는 증오와 인내를 감내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삶의 슬픔과 불행, 일체의 비극을 넘어서서 제 운명에 대한 대긍정에 도달함을 뜻한다.
새벽, 오전, 정오, 오후, 저녁, 밤 그리고 다시 새벽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반복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또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에서, 탄생, 성장, 죽음 그리고 새로운 탄생의 역사에서 니체는 시간에 갇힌 인간의 삶을 꿰뚫는다. 순간의 재현, 그것은 차이의 반복이자 영원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순간은 영원이며, 영원의 찰나에 갇혀버린 우리의 운명은 ‘지금, 여기’이다. ‘지금, 여기’를 깨닫고, 바라보고, 살아내는 힘은 바로 ‘주체의 의지’이며, 이 영원회귀를 긍정한 자는 위버멘쉬로 다시 태어나다. 위버멘쉬는 끊임없이 자기 내부의 허무, 모순, 약함, 경멸을 극복하는 존재, 즉 자기 결단과 자기 의지로 자기 극복적인 삶을 사는 인간을 의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머리말에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한다.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이 문구가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이나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작가도 이 표현이 인상적이었는지 책에서 언급한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듯하다. 삶이란 모든 모순을 껴안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니체의 말대로 생존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자기 극복이며, 행복이며, 어린아이이며, 위버멘쉬이다.
장석주 작가의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를 완독했다. 나는 무엇을 얻었고, 왜 읽었던가? 여전히 습관처럼 책을 읽었지만, 분명한 것은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 의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활자를 삶으로 끌어내려고 아동 버둥거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냈다. 그렇게 나는 니체를 통해 '주체성'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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