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왜 읽는가? 헤세의 책을 펼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봤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와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지식,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정보, 여가를 즐겁게 하는 쾌락까지 다양한 목적으로 독서를 한다. 책을 읽을수록 더 많은 책을, 더 다양한 작가를, 더 폭넓은 장르를 섭렵하려고 애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깨닫는다. 습관이라고 생각했던 독서 행위가 알고 보니 집착은 아닌지, 취미 활동이 아닌 의무로 변질된 건 아닌지 찝찝함에 점점 넘기는 페이지가 무거워졌다. 특히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독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종용 받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삶을 위한 수단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한 삶으로 점점 매몰되어 간다. 유명한 작가의 책은 다 읽어야 할 거 같고, 유익한 책을 섭렵해야 할 거 같은 의무감은 책에서 만난 지혜를 삶에 펼쳐낼 시간을 갉아먹는다. 그래. 책을 사랑하지만 숭배는 하지 말자. 애정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설렘을 담아 한 장 한 장 넘겨보자. 한 권의 책을 정복하여 성취를 목표로 두려던 습성에서 벗어나 행간의 여백을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여정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헤세의 책을 펼쳤다.

헤르만 헤세는 소위 책덕후였다. 위대한 작가이자 근면한 독자였고, 욕심쟁이 장서가이자 동시에 뛰어난 비평가이기도 했다. 책을 선정하고, 읽고, 쓰고, 보관하고, 비평하기까지 책과 관련된 모든 경험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야말로 덕후의 면모를 과감 없이 볼 수 있다. 헤세에 비해 "독자"로 정체성이 한정된 나에게는 그의 독서론은 깊은 영감을 주고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 의식적인 태도로 읽으라고 제안하고, 남들이 선택한 책을 따라 읽기보다는 스스로의 취향을 발견하라 충고하며 건성으로 빨리 읽기보다는 음미하면서 여러 번 읽어보라고 조언한다. 특히 책을 향한 태도를 관계 맺기라는 개념으로 접근한 부분은 나의 한정된 사고를 확장시켰다. 그는 책과의 관계를 교제한다고 표현한다.

"어떤 책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책을 거듭 읽으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면, 그는 오롯이 자신의 느낌을 믿을 것이며 어떤 비평으로도 자신의 그 기쁨을 망치지 않을 것이다. "p 208

"독서도 다른 취미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고 오래간다. 책은 친구나 연인을 대할 때처럼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해 주며, 그의 본성에 맞지 않는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무분별하게 후닥닥 해치우듯 읽어서도 안 되며, 받아들이기 좋은 시간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 섬세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쓰여서 무척 아끼는 책 들이라면 때때로 낭독하도록 한다." p210

나에게 책은 읽어야 하는 대상이었다면 헤세에게 책은 관계를 맺는 존재였던 것이다. 존재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랑이다. 헤세는 사랑하는 태도로 책의 존재를 인지한다. 사랑하는 이를 닦달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좋은 시간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관계를 맺어 가는 정성을 보인다. 이 정성에는 진정성이 깃들여있다. 그리고 책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내게 된다. 책을 만날 시간을 차분하게 기다리고, 정성껏 한 글자씩 읽어내려가고, 체화하는 시간까지 온전히 보내는 여유를 갖는 것이야말로 독서를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야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친 듯하다. 책을 더더 사랑해야겠다는 감정이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른다.


v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