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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부자의 세상을 읽는 지혜 -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
이준구.강호성 엮음 / 스타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세상 모든 구석구석을 경제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역사를 돈의 흐름으로 분석하는 세계사 서적들이 줄을 잇는다. 여기 시공간은 '조선'으로, 시선은 '부자'로 옮겨와 '조선 부자'의 눈으로 역사, 나아가 현재를 이야기해 주는 책이 있다. '조선 부자의 세상을 읽는 지혜'는 사농공상이란 계급의 굴레 속에서 돈의 흐름을 읽어 나갔던 조선시대의 인물 12명을 소개한다. 이들이 말하는 돈의 가치와 철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지 좇아가보자.
인격의 아우라를 풍기는 조선의 부자, 임치종
요즘 부자의 돈에는 운(부모) 혹은 능력(자수성가, 투자)의 아우라가 느껴진다면 조선 시대의 엽전에는 인품이 묻어있다. 역관 홍순언과 거상 임치종이 이룬 부의 시작도 엽전 한 닢이 아닌 타인에게 베푼 은혜였다. 특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용살이로 시작하여 불혹의 나이에 겨우 문상이 되어 거상으로 성장하기까지 보여준 임치종은 세상살이의 이치를 통달한 자의 인내, 노력, 기지를 보여준다.
"내가 이토록 부자가 된 것은 부지런히 모으고 일한 덕분도 있지만 의주 제일의 부자가 되려면 뭐랄까 천우신조랄까 도와주는 운수가 있어야 했소이다. 내가 곡식을 심으면 지나가는 소라도 밭고랑에 거름 될 물건을 한 무더기 누고 갔으면 갔지 곡식을 밟는 적이 없었소. 하다못해 호박을 심으면 한 꼭지에 두 개씩 열렸으면 열렸지 물러서 떨어지거나 썩는 법이 없었지요. - 바로 어제 선비님이 우리 집을 들어서는 순간 솔개가 병아리를 채어 가는 것을 보고 제 운수가 이젠 다 찼구나 직감을 했다오. 원래 얼마나 모을 수 있나 그 끝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내리막길이 시작된 줄 얼른 알고 당장 베푸는 행동에 옮기는 그것도 역시 상인의 타고난 상재가 아니겠습니까?" p40 - 41
계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조선의 부자, 임상옥
조선 부자들, 다시 말하면 조선 상인들은 어쩔 수 없는 사농공상이라는 계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삼 무역으로 한 시대를 평정한 국제 거상 임상옥도 제아무리 조선 제일의 부자라 할지라고 중인의 계급일 뿐이었다. 최상위 계급에 군림하는 현대 사회의 부자와 달리 조선 부자들은 왕과 양반들의 권위를 넘어서는 부를 과시할 수 없었다. 중인의 신분으로는 입을 수 없었던 비단옷은 창고에 쌓아두어야 했고, 5년이나 걸려 궁궐 같은 집을 지었지만 왕조의 사회 법규에 제약을 받고 다 헐리고 만다. 인삼 가격을 두고 실랑이하는 청나라 상인들 보란 듯이 인삼을 불태워버리는 배짱 두둑한 국제 거상 임상옥일지라도 한 나라의 계급제도 자체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자와 과거 조선에서의 부자 사이의 갭은 "계급"인가 싶다. 현재 우리들의 '돈'을 향한 열망은 일종의 '계급'을 향한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무역 상인에서 독립 운동가로 태어난 조선의 부자 , 이승훈
조선의 부자는 소위 금수저 출신들이 아니다. 이들은 사농공상의 계급에서 하위 계층 출신으로 대부분 천민 혹은 중인들이다. 역관, 무역, 보부상,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제도와 관습 안에서 불리한 조건을 안고 사는 이들이었다. '조선 부자의 세상을 읽는 지혜'에서 만난 12명의 인물들은 교과서나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왕과 양반들의 화려한 신분 이면의 역사를 알려준다.
오산 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이 인생 여정도 조선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천민 출신 이승훈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큰 부잣집 잔심부름꾼(방사환)으로 시작하여, 열여섯에 유기를 들고 황해도로 들어가 보부상을 하게 된다. 나름의 조직과 체계를 갖추어 하나의 조직을 이뤘던 보부상들의 세계, 이들은 조선 시대 통신과 유통, 운송의 역할을 하며 부당한 처우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집단으로 대항할 줄도 알았다. 이 지역, 저 지역 조선 구석구석을 떠도는 그들의 생명력과 애환이 우리 역사 한구석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었다. 수환 좋던 이승환은 보부상 경험을 토대로 유기 공장과 점포를 차려 어엿한 사업가로 성장한다. 저자는 이승훈이 정직함과 신의를 무기로 평양 최대의 거상으로 우뚝 섰다고 하지만, 이승훈은 자본 유통, 독점 매매, 운송업을 이해한 찐경영자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조선의 부자라는 타이틀은 얻었지만 이승훈의 삶은 조선의 운명처럼 고단했다. 발품 팔면서 행상 다니던 고단했던 시절을 극복했지만 망국의 기운은 개인의 삶을 잠식해갔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일제의 침략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혔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사회적 역할을 찾아 나섰다.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계기로 사회적인 인생으로 변태(變態) 한다. 한 개인의 인생이 이렇게나 역동적일 수 있다니 놀랍다. 화려한 생활과 거리가 멀었던 조선의 부자 이승훈의 진정한 재산은 삶을 향한 무한한 기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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