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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ㅣ 팡세미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 팡세미니 / 2021년 11월
평점 :

빨간 머리 앤이 우리에게 전하는 3가지 위로
"전 제 머리카락이 빨개서 싫어요. 주근깨 있는 얼굴이며 마른 몸은 상상해서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지만, 빨간 머리카락은 상상해도 다르게 바뀌지 않아요. 아예 빨간 머리가 아니라는 걸 상상하는 게 힘들어요." p37
어렸을 때 KBS에서 방영하던 "빨간 머리 앤"을 매일 시청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근깨~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상냥하고 귀여운 빨간 머리 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가슴에 솟아나는 아름다운 꿈~~" 타이틀 노래도 열심히 따라 부르면서 양 뺨에 있던 주근깨조차 앤이랑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자랑스러워했었다. 그 시절 나는 왜 그렇게 '빨간 머리 앤"을 좋아했을까.
매슈 아저씨를 만나 초록 지붕 집으로 처음 오던 날, 마차에서 앤이 매슈 아저씨에게 자신의 빨간 머리를 푸념한다. 앤이 앤이도록 빛나게 해주던 빨간 머리는 정작 당사자에게는 콤플렉스 요인일 뿐이다. 빨간 머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엉터리 염색약으로 초록 머리 앤이 되는 소동까지 일으킨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빨간 머리가 있다. 내면 한구석에서 콤플렉스로 작동하기도 하여 초록 머리 소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를 빛나게 해주는 개성일지도 모른다. 새까맣고 빽빽한 숱으로 촌스럽다고 여겼던 내 머리카락도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힘없고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가진 외국인들에게 항상 칭찬을 받는다. 대뜸 "I love your hair"을 외쳐주던 사람들, 그곳에서 촌스럽던 머리카락이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머리카락으로 재탄생한다. 우리 모두의 '빨간 머리'는 소중한 '개성'이자 '정체성'이라는 사실, 그 시절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메시지가 전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좋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 정말 죄송해요. 제가 너무 낭만과 상상을 좋아해서 탈이에요. 이번 일로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네가 하는 일들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렇게 말하니 너답지 않구나. 앤, 그래도 넌 어느 정도 낭만적인 게 좋아. 너에게 상상상력이 없다는 걸 생각하기 힘들구나. 조금은 그런 모습을 지녀도 좋아."
앤은 마릴라의 말에 빙그레 웃었습니다. " p183
엉뚱한 상상력으로 말 많던 앤을 핀잔주던 마릴라 아주머니는 어느덧 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앤도 그 사이 마릴라 아주머니의 충고와 조언을 깨달으며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된다. 하물며 나 스스로를 수용하기에도 용기와 지혜가 필요로 하는 일인데, 타인은 오죽하랴 싶다. 처음부터 앤을 인정해 주던 매슈 아저씨도, 부딪쳐가면서 서로에게 맞춰온 마릴라 아주머니도 모두 옳다. 두 사람 모두 앤을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앤에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두 사람이 보여준 사랑의 결은 다를지 몰라도 모두 똑같은 농도의 사랑인 것이다. .
"그런데 어느 날, 우리는 작은 오해 때문에 다투게 되었지. 조지가 사과를 했는데, 내가 용서해 주지 않았지. 사실 용서할 마음은 있었는데 기회가 없었어. 그 후로 조지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지. 그 집 사람들 자존심이 무척 강하거든. 난 가끔 그때 조지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걸 후회했단다." p214
앤은 우연히 마릴라 아주머니로부터 길버트 아버지인 조지와의 일화를 듣게 된다. 젊은 시절의 마릴라와 조지는 작은 오해에서 생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던 것이다. 길버트의 사과를 여러 번 거절했던 앤은 사실 화해하고 잘 지내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했다. 이런 앤의 모습은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데 인색하고 서툰 내 모습 같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매너로 여기지만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태도는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릴라 아주머니의 후회를 거름 삼아 앤은 길버트에게 사과를 하고 둘은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길버트와 길버트의 사과를 받아주고 자신의 오해도 사과하는 앤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실수와 오해, 갈등으로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관계 속에 놓이지만 다행히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필요한 건 앤처럼 사과를 받아줄 용기만 내면 된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불완전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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