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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조르바가 말하다. "삶"
조르바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화자인 '나'는 이성을 따르는 단정한 삶을 살아왔다. 책을 읽고 철학적 사유를 추구하는 관념적인 '나'와 달리 조르바는 거리에서 인생을 배우고 피와 살로 생을 살아낸다. 이런 화자에게 조르바의 언행은 '삶'이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며, '삶을 향한 태도'를 자문하게 한다.
"원숭이 껍질을 처음으로 벗어던진 원시인처럼, 아니면 위대한 철학자처럼 그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매달려 있다. 조르바는 이런 문제를 당장 긴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처럼 느낀다. 어린아이마냥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라는 신비는?]" p223
니체는 인간 정신의 발달을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로 이어지는 3단계로 설명한다. 관습에 복종하며 무거운 짐을 기꺼이 견디는 낙타, 기존의 관습, 규범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사자,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의 예술로 창조하는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는 자신 내면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니체의 어린아이를 구현한다.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잠재된 욕망에 솔직하게 대면하는 삶이 가능할까. 가능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불가능한 이상이 아닐까. 그래서 조르바가 독자에게 일종의 환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부, 권력, 성, 미를 향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독려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어떤 욕망을 억압받고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인가. 조르바가 충실하게 살아내는 자기 욕망이란 무엇일까. 다수가 추구하는 부, 권력, 성, 미와 같은 세속적 욕망에서 자유로울 욕망인가. 그런데 이성적인 삶을 살아왔던 화자도 그 또한 자신의 욕망을 따르던 삶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관습적이고 세습적이라고 하지만 그 또한 다른 영역의 욕망이 아닌가.
"카잔차키스의 삶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사색과 행동 등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p448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이라. 그렇다. 이것도, 저것도 다 일리 있고 납득되는 논리와 상황, 입장들이 늘 혼란스럽다. 이런 방황과 고민은 나만의 조화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투쟁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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