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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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르바가 말하다. "죽음"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한 실존을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길은 그저 죽음으로 향해가는 발걸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포와 두려움, 허무에 어쩔 줄 몰라 신에 의존하는 것은 아닐까. 작품에서 여러 인물들이 각기 다양한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에 좌절해 자살을 선택하는 청년, 그 청년의 죽음 때문에 억울하게 살해당하는 젊은 과부, 늙고 병들어 죽는 오르탕스 부인, 수도사의 죽음 등을 보여준다. 작가는 조르바의 마지막도 암시한다. 두 발로 꼿꼿하게 서있는 듯한 모습으로 세상을 등지는 조르바의 모습은 마치 죽음마저 당차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춤을 주던 조르바, 그는 첫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춤을 췄다. 아들 죽음 앞에서 온몸으로 슬픔을 췄다는 조르바, 그에게 자신의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영원히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가차 없는 경고, 동시에 연민으로 가득한 경고를 들은 정신은 자신의 나약함과 비열함, 나태함과 헛된 희망을 극복하겠노라고, 전력을 기울여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순간순간에 매달리겠노라고 결심한다." p248

"나는 침대에 누워 등불을 껐다. 그리고 내 졸렬하고도 비인간적인 습관에 따라 다시 한번 현실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피와 살과 뼈를 제거하여 추상적 관념으로 환원시키고, 그것을 일반적 법칙들과 연결시켜 지금 일어난 일은 결국 필연적이었다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 나아가 오늘의 비극은 우주적인 조화(調和)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거라는 최종의 가증스러운 위안에 이르렀던 것이다. ………몇 시간 후, 과부는 하나의 상징으로 변하여 내 기억 속에서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안식하고 있었다. 과부는 내 마음속에서 밀랍으로 감싸여 더 이상 내 안에 공황감을 퍼뜨릴 수도, 내 두뇌를 마비시킬 수도 없게 되었다. 이날의 끔찍한 일들은 시공간 속으로 확장되어 나가, 과거의 대문명들에 합류하였고, 또 이 대문명들은 지구의 운명과 합류하고, 지구의 운명은 우주의 운명에 합류하였다. 이런 식으로 하여 과부는 삶의 대법칙들에 순종하여 그녀를 죽인 자들과 화해하여 평온하고도 고정된 모습으로 화했던 것이다." p353

젊은 과부를 마음에 뒀던 화자인 나는 그녀의 죽음을 필연으로 인식한다. 죽음은 우주적인 조화에 기여하는 것, 그저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죽음 앞에서 비굴해지는 두려움, 공포, 나약함, 헛된 희망을 극복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곱씹어 본다. 조르바에게 죽음이란 결국 삶 그 자체가 아닐까.


v 리딩 투데이 선물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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