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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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의 남주는 함부르크행 보잉 747 좌석에 앉아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는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이 곡은 그를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스무 살 그 청춘의 순간인 희미한 나오코를 품은 선명한 초원의 기억으로, 영원한 기억을 약속했던 그 흐린 기억 속으로 그를 끌어들인다.

‘기억이란 참 이상하다. 실제로 그 속에 있을 때 나는 풍경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딱히 지난 뒤에 풍경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솔직히 말해 그때 내게는 풍경 따위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고 다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뭘 보고 뭘 느끼고 뭘 생각해도, 결국 모든 것이 부메랑처럼 나 자신에게 돌아오고 마는 나이였다. 게다가 나는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나를 몹시 혼란스러운 장소로 이끌어 갔다. 주변 풍경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아예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우선 떠오르는 것은 그 초원의 풍경이다. 풀 냄새, 살짝 차가운 기운을 띤 바람, 산 능선, 개 짓은 소리, 그런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주 또렷이. 너무도 선명해서 손을 뻗으면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더듬을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 사람 모습은 없다. 아무도 없다. 나오코도 없고 나도 없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렇게 소중해 보인 것들이, 그녀와 그때의 나, 나의 세계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그래, 나는 지금 나오코의 얼굴조차 곧바로 떠올릴 수 없다. 남은 것은 오로지 아무도 없는 풍경뿐이다. p12-13

그리고 불안전한 기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와타나베, 기즈키,나오코 - 그들의 불완전한 청춘과 사랑의 풍경이 말이다.

v리딩 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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