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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세계
고정기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7월
평점 :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을 즐겨본다. 화려한 연예인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매니저의 일상과 자질을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매니저들은 연예인을 감독하거나 보조하고, 때론 훈계하거나 위로하기도 하며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비단 연예계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마다 이와 같은 그림자 역할을 하는 숨은 조력자들이 존재한다. 스타 작가나 기자들로 친숙한 출판업 계도 마찬가지다. 진흙 속의 진주를 캐내듯 역량 있는 신진 작가들의 재능을 알아봐 인재를 발굴하고,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기획하여 대중의 선택을 받는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편집자야말로 또 다른 멀티플레이어이다. '편집자의 세계' 저자는 이런 편집자들의 숨겨진 노고가 알려져 선진 외국과 같이 우리나라 편집자들도 대접을 받는 문화가 장착되길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힌다.
'편집자의 세계'는 헤밍웨이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를 포함하여 미국을 대표하는 편집자 15명을 소개한다. 이들이 어떤 계기로 출판, 잡지계에 입문했는지, 그리고 무명의 작가를 어떤 과정을 거쳐 스타로 키웠는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그들이 추구한 편집자상은 무엇인지 재미있게 소개한다.
저자는 "편집자는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고 연출자이며 저자로 하여금 새로운 사상이나 문화를 창조하도록 자극하고 도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정의한다.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한 스크리브너스의 편집자인 맥스웰 퍼킨스 이야말로 이 정의에 가장 부합한 인물이다. 퍼킨스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첫 작품 '낙원의 이쪽'을 읽고 그의 재능을 알아챈다. 졸작이라고 판단한 스크리브너스의 사장을 설득하여 '낙원의 이쪽'을 출판하고 5만 2,000부나 팔리면서 피츠제럴드는 유명 작가로 성공한다. 피츠제럴드는 퍼킨스에게 헤밍웨이를 소개한다. 스크리브너스에서 출판하기에는 다소 경박한 말과 외설스러운 대화가 있는 헤밍웨이의 작품을 반대하는 사장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출판하여 성공한다.
랜덤하우스의 설립자이자 모던 라이브러리의 편집자인 베넷 세르프 또한 윌리엄 포크너, 유진 오닐, 에드거 스노와 같은 위대한 미국 작가를 발굴했다. 덕분에 율리시스, 앵무새 죽이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수많은 걸작을 랜덤하우스에서 출판하게 된다. 그는 편집자의 역할을 작가를 발굴하고 콘테츠를 창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담당 저자의 이익과 출판사의 이익을 균형 잡는 것이라고도 했다. 편집자의 역할을 입체적이고 본질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베넷 세르프는 뛰어난 편집자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재능을 어느 정도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 편집자가 되려면 흥미의 범위가 상당히 넓지 않으면 안 되고, 영어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박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저자가 쓰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협력도 할 수 있다. 편집자가 뛰어난 작품을 인정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책을 널리 읽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대중이 어떤 책을 사줄 것인가 하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감각이 없으면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책일지라도 수요가 없으면 출판사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p84-85
'에스콰이어' 창간자이자 편집자인 아놀드 깅리치는 구독자를 조사하여 '새로운 여가와 생활을 위한 잡지'로 포지셔닝 하였다. 자신의 귀족적인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을 높여내 부유한 미국인을 위한 잡지로 자리 잡게 된다. 편집장 프랭크 크라우닌셀드는 자신의 고상한 취미를 반영한 잡지 '베너티 페어'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미술, 문학, 연극을 소개한다. 이 잡지를 통해서 많은 미국인들이 피카소, 루오, 마티스, 고갱 등의 화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하니 미국 사회에 끼친 문화적 영향력을 짐작할만하다. 1960년대 '코스모폴리탄'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쓰러져가고 있었다. 헬렌 걸리 브라운이라는 40대 여성을 새로운 편집자로 맞아들이게 되는데, 그녀는 '섹스와 독신 여성'이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었다. 여성의 사랑과 섹스에 관한 그녀의 경험과 의견을 잡지에 반영하여 '코스모폴린탄'은 기사회생하여 여전히 여성들의 애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이 대단했던 편집자들은 중첩될 수 없는 독창적인 출판물을 만들어냈다. 이들에게 유일한 공통분모가 있다면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을 갖고 진심과 열정으로 출판물에 녹여 내었다는 것이다. 명확한 편집 방향으로 유일무이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자질은 편집자라는 직업적 영역을 떠나 한 개인의 삶의 태도에도 큰 영감을 남긴다. 명확한 신념과 철학을 녹여내는 삶을 산다는 것, 그것만큼 허무한 인간의 삶에 명확한 의미를 만들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V 리딩 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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