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 당신이 커피에 관해 알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개정증보판
마크 펜더그라스트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 빠지면 상대에 대한 시시콜콜한 모든 면을 다 알고 싶어 한다. 바로 '커피'가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커피의 사소한 모든 정보를 도토리 주워 담는 다람쥐처럼 꾸역꾸역 담아내 왔다. 파편적인 지식이 어지러워 한 번은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지만 마땅히 기회가 없었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가 이런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줬다.



에디오피아의 춤추는 염소 이야기로 시작하는 커피의 유래부터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

농장주의 배만 채우는 커피 농장과 참혹한 환경에서 착취당하는 노예와 노동자들,

커피 보급에 큰 기여를 한 제1, 2차 세계대전,

커피 생산이 활발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

인스턴트커피에서 스페셜티 커피까지 이어지는 트렌드 변화,

커피 산업의 대표 브랜드 스타벅스 이야기까지 깊고 넓은 이야기보따리가 무려 750 페이지 넘게 펼쳐진다. 말 그대로 "Everything about Coffee"이다.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에 의해 발견된 커피는 에티오피아 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자리 잡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현재도 여전히 정교한 의식에 따라 커피를 끓여 마시고, 종종 이 의식은 한 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가 발견된 후,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까지 건너갔고, 수피교 수도승들이 졸지 않고 밤새워 기도하기 위한 용도로 마셨다. 치료제나 종교적 보조 수단으로 활용되던 커피는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면서 커피하우스들이 생겨나게 된다. 15세기 말에는 이슬람 순례자들을 통해 페르시아, 이집트, 터키, 북아프리카로 퍼져나가고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오스만 제국의 터키인들이 예멘을 점령한 후 커피콩이 수출품으로 부상했다. 당시 예멘의 수출항 이름이 모카(Mocha)이다. 17세기 무슬림 순례자에 의해 밀반출된 커피콩은 인도 남부 지방인 마이소르의 산악 지대로, 네덜란드 인에 의해 네덜란드와 동남아로,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8세기에는 라틴 아메리카로 전해지면서 커피의 생산과 유통, 소비가 세계적 차원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지만, 동시에 참혹한 환경에서 원주민과 노예, 여성과 아동의 노동은 착취당하고 인권은 유린된다. 최적의 커피 재배지를 위해서 원주민들의 터전은 빼앗기고, 원주민들은 강제노동과 채무 노예 형태로 고통을 겪는다. 농장주만이 큰 수익을 올리며 그들의 배만 불린다.


20세기 초 불황전 3백만 달러에 가까운 순이익을 벌어들이던 맥스웰하우스의 매출은 곤두박질친다. 당시 미국은 라디오로 인한 큰 변화의 물결을 겪고 있었다. 7년 사이에 천 퍼센트가 넘는 금액이 라디오 구입에 지출되었고, 라디오 방송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맥스웰하우스는 <맥스웰하우스 쇼보트 Maxwell House ShowBoat>라는 프로그램을 내세워, 제품의 이미지 개선을 꾀한다. 프로그램은 대성공을 이루고, 맥스웰하우스는 대공황이 가져온 불황이 무색해질 정도로 매출이 85% 상승한다. 라디오 보급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탄 맥스웰하우스의 도전은 상업 광고의 변화를 유도하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제1,2차 세계 대전은 커피 보급을 촉진한다. 군은 군수 물자 생산 공장 근로자들에게 커피를 공급해 생산율을 올리기도 했다. 군 커피 담당자들은 생두를 해외로 수송하여 휘발유 드럼통을 이용해 임시방편으로 로스터를 만들어 로스팅 하기까지 한다. 추운 참호 속에서 인스턴트커피 일지라도 따듯한 커피 한 잔은 이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전쟁 후 새로운 인스턴트 브랜드들의 등장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성향과 맞물려 인스턴트커피를 찾는 수요는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아프리카의 값싼 로부스타 원두를 원료로 제조업자들이 커피 가루를 과잉 추출함으로써 원두 한 알 한 알을 쥐어짜 원가를 낮추고 품질은 양보한다. 1952년, 미국 전체 커피 소비에서 맥스웰하우스와 네스카페를 필두로 한 인스턴트커피는 17퍼센트를 차지한다.


20세기 초 헨리 피트는 질 좋은 커피를 로스팅 해서 팔기로 마음먹고 네덜란드에 로스팅 사업체를 설립했다. 그는 통원두 커피의 판매에 주력하면서 고객들에게 질 좋은 커피의 맛을 보여 주기 위해서 커피바도 마련했다. 고객에게 질 좋은 원두와 커피의 맛을 열정적으로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그의 가게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이렇게 시작된 스페셜티 커피의 인기는 1970년대 초 미국과 캐나다에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쯤 시애틀에서는 전설이 시작된다. 유럽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커피의 맛에 눈을 뜬 제리 볼드윈, 고든 바우커, 제브 시글, 이 세 명의 시애틀 대학생들은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좋은 원두를 사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까지 차를 몰고 갔다. 그러던 중, 그들은 시애틀에 품질을 우선시하는 로스터리 커피 하우스를 내기로 결심한다. 바로 스타벅스이다. 짧은 시간 미국 전역에 돌풍을 일으키며 독보적인 성공을 달리던 스타벅스에 하워드 슐츠가 새로운 마케팅부문장으로 고용되면서 진화하기 시작한다. 하워드 슐츠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스타벅스에 에스프레소 바를 도입하고, 생두를 에스프레소용으로 다크 로스팅 하기 시작한다. 직원들을 바리스타라고 부르고 음료의 사이즈도 스몰, 미디엄, 라지 대신에 쇼트, 톨, 그란데라고 바꾸며 스타벅스 만의 고유어를 사용한다. 표준화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전문적으로 직원을 훈련시키고,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라떼를 입소문으로 전파시키면서 스타벅스는 유행 그 자체가 되었다. 스타벅스 만의 음악을 담은 CD, 노트북을 이용하며 일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 충성 고객을 위한 다양한 MD 제품들까지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섬세하고 정교한 경험은 다양하고 발전하고 있다.


정신없이 커피의 역사를 따라오니 커피 한 잔에 담긴 역사와 문화는 한 모금의 커피 맛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기댄 정치 경제적 수단으로 전락한 커피의 맛은 쓰디쓰다. 다행히 커피 맛만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의 가치를 소비하고자 하는 이들이 공정 무역 커피에 갖는 관심과 기대가 안심이 된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