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69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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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구성하는 그들, 통속 소설의 밑그림을 그렸으니 현실적 요소를 보완해 신뢰성을 부여하자고 벨보는 제안한다. 프루스트는 장엄 미사보다 천박한 유행가가 삶을 훨씬 정확하게 그렸다고 했다. 위대한 예술은 단지 예술가의 이상적 세계를 구현하지만, 통속 소설이야말로 겉보기에 투박해 보여도 진짜 현실을 구현한다는 그의 주장이 에코의 일관된 세계관처럼 보인다.

 

지상과 지하, 이상과 현실의 데칼코마니 - 지상과 지하의 세계는 곧 이상과 현실의 데칼코마니 아닌가완벽히 상반되지만, 완벽한 닮은꼴인 모양 - 서로가 서로의 거울 같은 관계를 상기시킨다.


벨보, 카소봉, 디오탈레비는 그들의 <계획>에 집착하면서, 그들만의 비밀을 견고하게 만들어간다. 이는 조력적이던 알리에와의 관계에 균열을 불러오고, 디오탈레비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전망경실을 나서는 카소봉, 두렵고 무섭다. 발동기, 재봉틀, 회전목마 같은 원심 분리기, 전동식으로 개폐되는 회전문, 세 개의 소형 톱니바퀴를 거느린 톱니바퀴, 긴급 섬광 발신 장치 등을 지나 <그들>이 모일 회중석이 잘 보이는 곳에 숨는다. <그들>은 합창대석 혹은 회중석으로 들어가 모여들고 있다. 합창대석 천장 중앙의 쐐기돌에 진자가 매달려 있다. 피에몬테 파티 때 봤던 '브라만티'가 주문을 외우자, 화가 '리카르도'가 무릎을 꿇는다. <트레스> 교단의 입회식이다. 브라만티의 호명에 '구베르나티스', '슬로안 서점 주인', '카메스트레스 교수', '가라몬드 사장', '박제사 살론' 등 낯익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알리에와 그의 손을 잡은 로렌차까지 소개된다.

 

아르덴티 대령과 벨보가 끌려 나온다. 심문을 당하는 벨보가 위험해지자 로렌차가 벨보의 교수대로 다가 가다가 피에르의 칼에 죽고 만다. 그리고 벨보도 진자의 추에 매달려 교살당한다. 죽음을 통하여 세상의 오류와 그 운행의 질서를 벗어난 벨보는 이로써 하나의 부동점이 되어 세상을 매다는 진리가 된 셈이다.

  

자신이 본 의식이 브라질에서 암파루가 겪은 일종의 접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리아의 <밀지>의 해석, 즉 프로뱅의 밀지가 배달 명세표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성전 기사단의 회동도 없었다. , <계획>도 없고, 밀지도 없다.

 

카소봉, 벨보, 디오탈레비는 존재하지 않는 <계획>을 발명해 내었다. <그들>은 이 <계획>을 믿었고, 자신들이 일부분이라고 확신했다. 누군가가 계획을 발명하고, 다른 사람이 이를 수행한다면, <계획>은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주식 시장조차 누군가의 계획이고, 사람들은 이를 믿고 행동한다. 그러다 손해를 보게 되면, 배후를 찾는다. 책임과 죄의식은 음모를 조작함으로써 상쇄된다. 밝혀지는 순간, 모두 하찮게 느껴지는 <비밀>, 오로지 텅 빈 비밀만 존재한다.

 

벨보는 비밀을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에게 힘을 과시했다. <그들>은 그 비밀에 집착하고, 환상을 갖는다. 벨보가 비밀은 없다고 주장할수록 <그들>의 욕망은 분별을 잃는다. 카소봉은 해소되지 않은 구멍을 채우기 위해 벨보가 남긴 파일을 읽는다.

 

그리고 카소봉도 자신에게 닥칠 <그들>을 기다린다. 리아와 줄리오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산이 참 아름답다.


종교, 진리, 국가, 가족, 우정, 사랑 이 모든 건 우리의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가 이 환상에 믿음을 덧입힘으로써 진리가 되고, 목적이 되고, 신이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실, 우리의 허상이 낳은 맹신이라는 비밀을 견딜 수 없는 <그들>이 존재하는 한, 환상은 실제로 재탄생하여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그들>이 되어 간다


v 리딩 투데이 지원 도서입니다.



"사람들은 <계획> 같은 것에 목말라 있어요. 당신이 사람들에게 그걸 하나 던져 봐요. 그러면 늑대 떼처럼 몰려들 테니까요. 당신이 발명하면 사람들은 믿어요. 기왕에 존재하는 것에다 발명을 보태는 거, 그거 잘하는 짓이 아니라고요." p342


"음모, 만일에 음모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 우리가 그 전모를 알게 될 경우, 비밀이라는 것은 우리를 낭패감에서 해방시켜 주고, 필경은 우리를 구원해 준다. 비밀이 구원하지 못한다면, 비밀을 안다는 것 자체가 벌써 구원이다. 자, 이렇게 굉징한 비밀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P345


"진정한 비의 전수자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밀은, 내용물이 없는 비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원수가 고백을 강요하지 못하고, 경쟁하는 자가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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