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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중편소설 “피버 드림”은 ‘도시 여자 아만다’와 ‘시골 소년 다비드’의 대화로만 전개되어 희곡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죽음을 곧 앞둔 아만다에게 다비드는 “벌레가 처음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찾아야 한다며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요구한다. 아만다는 다비드의 엄마인 카를라와 함께한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작품은 “현재의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 속에 “과거의 아만다와 카를라의 대화”가 진행되고, “과거의 아만다와 카를라의 대화” 속에서는 “더 과거인 카를라와 다비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중첩된 구조를 형성한다. 그리고 모든 대화는 현재형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혼란스럽지만 동시에 입체적인 생동감이 느껴져 작품으로 강렬하게 빨려 들어간다.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는 미묘하게 겉돈다. 아만다는 집요하게 “니나의 행방”을 묻고, 다비드는 “벌레가 처음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간이 없어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한다.
카를라는 다비드의 이야기를 아만다에게 하기 시작한다. 카를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만다의 시선은 수영장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맴도는 딸 니나에게 향해있다. ‘구조 거리’ 안에 딸 니나가 있어야 안심하는 그녀다.
카를라는 남편 오마르가 돌보던 종마가 없어지자 다비드를 데리고 찾으러 나선다. 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종마를 발견하고 방심한 사이 어린 다비드도 냇가의 물을 마신다. 다비드 앞에 죽어있던 새 한 마리가 내심 불안하다. 다음날, 종마 또한 퉁퉁 부어 흉측하게 죽은 채 발견되고, 다비드도 심상치 않은 증세를 보인다. 불안한 카를라는 사람들의 기를 보고, 기를 읽는다는 ‘녹색 집의 여인’을 찾아간다. 녹색 집의 여인은 아이가 벌써 독에 노출되었고, 하루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말한다. 다비드의 정신을 ‘이체’ 해야만 독도 함께 빠져나가기에 살 수 있다고 카를라에게 전한다.
죽어가는 아만다가 앓고 있는 fever dream(열병)처럼 모호하고 혼동스러운 중첩된 대화 속에서 누구의 진실을 따라가야 할지 독자 또한 혼란스럽고 막막하다. 아만다는 왜 죽어가고 있으며, ‘몸의 이체’를 한 다비드의 존재, 니나의 행방, 벌레의 정체 등등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다. ‘모호함과 혼동’ 만을 명확하게 묘사한 작가의 역량은 소설이 풍기는 분위기만큼이나 오싹하고 소름 돋는다. 오래간만에 문학 같은 문학 책을 읽었다는 꽉 찬 만족감이 주는 짙은 여운이 소중하다.
✔️ 출판사 창비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