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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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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화자는 비인간이다. 그들은 바로 톡토기, 거미, 모기가 연구원인데 저술가가 되어 두 레즈비언 인간(책 속에선 두발이 엄지) 호랑과 버들을 관찰하는 이야기다. 곤충인 톡토기, 거미, 모기는 호랑과 버들을 보며 자신들의 죽음, 감정, 두려움, 행복 등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 이미 머리가 살짝 아프고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더불어 우리는 관찰하고 모험하는 우리의 본성을 발휘해 미숙하기 짝이 없는 두발이엄지들의 생태를 기록해왔다.”(12쪽) 곤충을 통해서 본 인간 아니 두발이 엄지라니, 그것도 레즈비언이라니 이런 내용을 상상해낸 작가가 놀라웠다. 곤충들은 각자 관찰 기록을 시나리오 형태로 재현하기도 하고 그냥 설명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론 시나리오 형태가 재미있었다.
번식을 할 수 없는 사랑은 가치가 없는 것일까. 버들과 호랑의 사랑은 번식할 수 없다. 번식이란 것이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말일까. 곤충들이 바라본 그들은 분명 사랑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아픔을 고백한다. 무엇하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다. 계절의 변화도 곤충들의 이야기도 두발이엄지들의 이야기도 모두. 그리고 그 자체가 모두 환희로 다가온다.
🔖 50쪽
겨울엔 이불을 덮어주고 봄에는 생리통을 앓는 배를 만져주고 여름엔 벽에 달라붙은 모기를 잡아주었어(이미 피를 빨렸는데도!)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얼만큼의 애정이 필요할까?
🔖 115쪽
그런데 비생식 암컷 엄지는 무엇을 위하여 함께하는가. 번식을 향한 유전자 메커니즘이 아닌 그 무엇이, 그들의 관계를 추동하고 지탱하는가.
🔖 116쪽
고작, 겨우, 단, 이렇게 인간의 언어는 우리의 시간을 재단하고 비교하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탓하게 만든다. 덧없다거나 허무하다거나 잔혹하다는 말로 우리의 삶을 못 박아 고정해놓고 우리가 누렸던 꽃가루와 나무진, 과일즙의 기쁨을 얄팍하게 증발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