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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요조.임경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임경선 작가에 대해
임경선 작가 초청 북콘서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미 작가의 팟캐스트를 열렬히 듣고 있었고, 임경선 작가의 책이라고 하면 소설, 에세이 할 것없이 죄다 찾아 읽을때인지라 열렬한 자세로 참여했다.(신청시간에 맞춰 알람까지 설정해두었다.) 아직도 기억나는것 하나는 책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자 이제 각자 고민이나 이야기 해봐요. 토요일 낮에 이곳에 오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했다. 실제 당시 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사람과 관계에 치여, 방향을 잃은 느낌. 말그대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걸까,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걸까. 내심 위로가 되던 순간이었다. 딱히 내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자부할 수 있다. 임경선 작가의 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노라고. 소설, 에세이 할 것 없이 모두다. 개인적으로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작가의 입장을 고수한 작가의 소설을 에세이보다 더 좋아한다. 특히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내가 무너질때마다 정독하는 책이다.(벌써 몇번이나 정독했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소설 속 씩씩하고 묵묵한 인물들이 나에게 힘을 내라고, 응원해주는 것 같다.(이번 방콕여행 후에도 정독한건 절대 안비밀) 오래 글을 썼으면 하는 작가, 임경선 작가. 끝끝내 후리스와 내복을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조 작가? 뮤지션? 책방주인?에 대해
다재다능한 여자같으니라고. 요조에 대해선 무엇을 붙여야할지 모르겠다. 내게 가장 익숙한 것으로 이야기하라면 팟캐스트 진행자인데. 사실 요조에 대해 아는거라곤 “사랑의 롤러 코스터~”밖에 없었다.(홍대여신으로 이름을 떨칠때에도 나는 요조의 존재를 몰랐다.) 이마저도 부르는걸 본 적은 없고 그저 라디오에서 몇 번 들었는데 음이 원체 특이해서 그냥 외워졌다. 팟캐스트 세계에 발을 들이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빨간 책방이 슬슬 지겨워진 어느 날 알게된 “책 이게뭐라고”. 내가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잖아?라며 듣기 시작했는데 요조가 있었다. 그땐 궁금했다. 요조가 왜 책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것일까. 알고보니 요조는 책방 주인이었고, 책을 좋아하고, 이미 글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요조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팟캐스트를 듣다보니, 목소리가 너무 매력적이다. 특히 그 느릿느릿한 말투. 아무리 누가 뭐라해도 절대 빨라지지 않을 것 같은 말투. 그렇게 나름대로 정을 쌓아갔다.(일방적인 정) 팟캐스트를 챙겨듣고, 제주도 책방 무사를 찾아갔다.(그것도 두번이나!!) 하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와 무척 친하다는 사실(뭐랄까, 혼자 대단한 사실로 여겨짐). 난 이 사실이 왜 이렇게 반가웠던걸까. 기본적으로 “끼리끼리” 친해진다고 생각한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같은 부류의 사람들. 그때부터 더 좋아진 요조. 언젠가 음반을 꼭 발매했으면 좋겠고, 지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사람. 그런 목소리로 책을 냈으면 좋겠는 사람. 영원히 잭키찬으로 남았으면 하는 사람, 내게 요조는 그런 사람이다.
두 사람이 만나 “교환일기”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그녀들의 일기 혹은 수다는 범위라는게 없었다. 물론 “여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책 제목도 결국 “교환일기”라는 낯간지러운 이름 대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가 아니었을까. 그녀들은 자신에게 또 서로에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어떠한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은 날것이지만 농도가 짙은 이야기는 듣는내내 마음을 울리더니 읽는동안에도 마음을 울렸다. 천천히 읽으며 밑줄을 긋게 만든 책이었다.
각자 18번씩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한다. 자칫 개인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덤덤하게 말한다. 주춤거림이 없어 좋은 이야기. 나아가고 참고 해내는 대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멈춰서 생각하고 참는대신 풀어내라고 응원하는 것 같다. 두사람만의 특유의 열심과 성실과 자유로움이 묻어 있는 글을 읽으며 내내 감탄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들의 삶과 생각에 나의 삶과 생각을 빗대어 보았다. 나 잘하고 있는건가, 반성을 하고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위안을 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였다. 책을 읽는내내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나서 기뻤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발췌]
“저는 정말 바보 눈에는 바보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을 백 퍼센트 믿거든요. 그래서 어떤 영화나 책이 명백한 문제는 없는데 감흥이 없고 별로라고 여겨질 때, 일단 문제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55쪽, 요조)
“나는 아무리 건강한 게 최고라고 해도,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때 건강하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항변하고 싶어. 건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건강이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닌 것 같아. 건강 자체가 삶의 목적이나 열정이 되는 인생은 어쩐지 심심하고 쓸쓸해.”(65쪽, 경선)
“인간은 ‘감정’이라는 영역을 가지고 있어 종종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과히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아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고 때로는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95쪽, 경선)
“앞으로 무슨 어려움이 있든 간에,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는 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어. 하지만 그와 동시에 행여 나의 슬픔, 나의 고통에만 예민하게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항상 서늘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겠고.”(196쪽, 경선)
“다만 제가 겨우 아는 것은 나는 나를 모른다는 것, 그저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들이 나를 더욱 나로서 만들어준다는 것뿐이에요.”(235쪽, 요조)
“몸을 열심히 부려서 땀을 흘리면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고, 거창한 표현이긴 하지만 어쩐지 생의 작은 한순간에 최선으로 임한 것처럼 뿌듯하고, 심지어 변태처럼 이 땀을 어딘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어요.”(264쪽, 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