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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 새벽,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을 집어들고 새벽부터 미친여자처럼 낄낄거리고 있었다. 잠도 덜 깬, 아직 이불을 덮은 채로 출근을 1시간 반정도 남겨놓은 시간이었다. 얼른 자리를 박차고 씻어야 하는데 너무 웃겨서, 이 웃긴 작가가 박정민 배우가 맞는지 의심하며 계속계속 출근을 보류한 체 읽고 있었다. 최근에 이렇게 웃음 넘치는 산문집이 있었던가. 중요한건 가볍지만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박정민 배우는 자신의 찌질한 시절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문제는 나 이렇게 사니까 불쌍하게 봐주시요,가 아닌 찌질한데 당당하다. 약간 미친 남자처럼 당당함이 시선을 확 끈다.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그 자유를 맘껏 누린다. 조금만 방향을 틀었어도 살짝 진부해지거나 눈물날 내용을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승화시킨다. 나도 이렇게 성공할 수 있을거야, 누구나 다 힘든 시간이 있는거야,라는 메세지는 없다. 그냥 나답게 살아야지, 성공이 뭐 별건가 가볍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물론 너무 가벼운 느낌에 자칫 이 배우, 아니 이 작가 글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쓴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근데 무엇이라도 써본 사람은 안다.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담백하게 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 어려운걸 박정민 배우는 씩씩하게 해낸다. 장하다, 박정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덕분에 앞으로 박정민 배우의 연기가 기대된다. 웃기면 웃긴대로 진지하면 진지한대로 이 배우의 색깔을 알아버린 느낌. 마지막 책이 되지 않길 바란다는 바람은 분명 배우 아니 작가만의 바람이 아니라는걸 알았으면 좋겠다. 너무 힘이 빠진체 실실거리며 살수는 없지만, 가끔은 이렇게 힘을 쭉 빼면 조금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웃음으로 힘을 얻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고마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