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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
HELENA 지음 / 보름달데이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구애 / 헬레나 에세이 / 보름달데이
<구애>를 읽는내내 작가 헬레나가 부러웠다. 어쩜 자신의 감정을 이리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감정적이고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너무 솔직한게 아닐까. 이리저리 재다보면 결국 내가 쓴 글은 나에 의해 재단되기 시작하고 끝내 처음과 다른 모양으로 남는다. 그 글이라도 사랑하면 좋을텐데 이따금 구석에 버려두곤 한다. 이 책은 그런 구석에 있는 이야기까지 세심하게 보듬었다. 모든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모든 글에 애정이 담겨있다. 마음대로 재단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어리석게도 그 때의 나는 내가 어디론가 떠나버리면 그 어떤 것이라도 조금쯤은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변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건 다른 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었음을,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야 알았다."
-105쪽
작가 헬레나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얻지못했고, 끝내 그 사랑을 얻었다. 그 사이사이 일찍 여의게 된 아버지, 너무 사랑했지만 끝내 편찮으셔서 떠나버린 할머니, 몇 번의 고비를 넘긴 어머니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낸다. 방황하던 자신을 고스란히 내보낸다.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두 번이나 떠났던 곳에서 결국 떠나는 것이 답이 아님을 알게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이 버거울땐 어김없이 떠남을 선택하고(그것이 짧든 길든) 끝내 다시 돌아가는 것이 답이란걸 알아가며 살아간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읽는 동안 감정의 방해나 어려움은 없다. 다만 끊임없이 나를 비교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사실 우리 모두 불안하고 흔들리는데, 유독 나만 그런건 아닌가 생각했던 나를 위로한다. 이따금 누군가가 생각나기도 한다. 종종 그 생각에 머물러 읽기를 중단하고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헬레나처럼, 나의 삶을 돌아본다. 그간 나는 어떤 모습이었나. 괜찮은 하루들을 보냈었던가. 짧은 여행을 하는 느낌이랄까. 작가의 말처럼 작가의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도 "유일무이한 드라마"같은 느낌이다.
"감성은 오글거림으로 순수함은 호구로 변질되어 가는 요즈음"(작가의 말)에 꼭 필요한 에세이가 아닐까. 나의 힘들었지만 순수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조금 뭉클해진 마음으로 다 그런거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힘을 얻은 느낌이다. 더불어 누군가의 삶도 함께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에세이다.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날들은 어찌되었건 결국은 오고 결코 피해가지 않을 내일을 견디며 꽤 힘들었던 어제가 되어있다. (중략)
그런 날이 오고, 그런 때가 있고, 그런 내가 온다. 내가 당신이 되는 순간이 오고, 당신이 내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니 억울해하지도, 외로워하지도 말 것. 누군가의 행복했던 어제와 꼭 닮은 나의 내일이 언젠가는 반드시 존재하고, 나와 같은 소상한 누군가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 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