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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
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평점 :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는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이 책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으로 나왔습니다. 이 책은 지난 1972년 첫 출간된 이후 49년 간 초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널리 호평을 받아온 책인데요. 저도 어린 시절 조지프 캠벨의 책을 읽으며 신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기 때문에 아직 신화는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시거나 생소한 분들도 쉽게 입문하시기 딱 좋을 것이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 책은 캠벨이 서문에서 밝히듯, 1958년부터 1971년까지 신화와 관련해서 했던 강연 중 13편을 구성하여 엮은 책입니다. 강연들은 단순히 시간 순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제 1장 '신화가 과학을 만났을 때'에서 오늘날의 과학과 신화처럼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로 흥미를 끌며 시작하고 다음으로 인류의 출현과 오래된 의례 이야기들, 그리고 동서양 예술과 종교나 사랑, 전쟁, 평화 등의 신화를 작은 부분들로 이어 볼 수 있도록 잘 구성했기 때문에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바로 지금,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요즘처럼 코로나19 등으로 예기치못한 혼란과 불안감이 커지는 시대에 조지프 캠벨이 신화와 함께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과학과 음악, 문학, 역사, 심리학 등 전 세계 곳곳에 오랜 시간 동안 영향을 준 신화를 알아보면서 지금 현재의 나에게 중요한 '축'을 제대로 세워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여러 신화적 장면들과 함께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들도 함께 배울 수 있습니다. 우선 우주가 처음 태어났을 때 끝없는 전쟁 속에 위험을 무릅쓴 신들이 바다를 저어간 끝에 우주 바다에서 좋은 것들이 나왔다는 힌두교 신화로부터 "나는 이 옛 인도 신호를 오늘날의 우리 세계에 대한 우화로서,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 밀어붙이라는 권고로서 여러분에게 전한다"는 저자의 말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에 징집되어 전쟁의례에 차출되고 쌍둥이 신화와 연결지으며 설명한 나바호족의 이야기와 대비하여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평화로운 환경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라다가 갑자기 전사 역할을 하게 됐을 때 심리적인 인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독립 시기가 늦어지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늘어가는 요즘 이렇게 정서를 뒷받침해 줄 신화의 중요성은 큰 것이었구나 하는 점을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10장 '내면으로 떠난 여행: 조현병의 연구'에서는 사회면 뉴스에서 많이 접했던 조현병을 신화로 설명하여 새롭게 알게된 점들이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책에서는 신화의 이미지 언어로 해석했을 때 조현병이란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되찾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내적·퇴행적 여행"이라고 설명하네요. 여러 사회적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의학적 관점에서 바로잡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신화적 측면에서 설명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각종 정신질환을 가진 약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를 키워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는 신화가 그들이 평생 속할 환경과 풍요로운 관계를 맺게 해줄 메시지를 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살아 있는 신화의 주요 기능들을 역설하는데요. 역시 심리적으로 안정된 자세와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신화의 상징들과 이미지를 잘 이해하고 현재의 사회 활동에 맞게 활용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됐네요.
책은 서양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양에 대한 신화 이야기들도 많이 실려 있어서 신화가 그리 멀지않게 있음을 깨달으며 반갑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카오의 관음상, 그리고 자갈과 바위로 표현한 일본의 정원에서 '선禪'의 개념을 이야기한 것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건축물들이나 정원의 돌 하나조차도 숨겨진 신화적 의미를 가지지 않았을까 눈여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우리 삶의 밑바탕에 깊게 자리한 신화는 이처럼 우리 주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처럼 신화 이야기가 한 권으로 잘 정리된 책을 읽으면 생각의 폭이 확장될 수 있겠죠?
특히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저자도 "참 근사한 테마가 아닌가!"라고 이야기하며 시작한 제 8장 '사랑의 신화'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고대 설화의 사랑의 신과 바그너의 오페라로 가볍게 알고있었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설 이야기 등 어렴풋이 알고있던 신화 장면들을 자세히 알게되어 재미있었는데요.
그 중 인도의 '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에서 "우리가 사랑의 환희 속에서 우리 자신이라는 한계를 넘어 우리 밖으로 나감으로써 이 진리를 알고 경험한다"는 초월적 경험에 대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도덕성의 기초' 글을 함께 읽어보니 신화를 철학적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쇼펜하우어가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을 죽음 또는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만큼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이 "자신은 타인과 별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존재의 근본에서는 하나라는 진실이 그를 움직였다"고 말한 것을 일컬으며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낙오된 동료들을 구출하는 젊은 병사들의 뉴스를 떠올렸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도 가끔 본인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앞에서 용기내어 목숨을 구한 사람들의 뉴스를 볼 때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혹은 인간의 본성이 선인가 악인가 또는 그와 관련이 있을까 등의 생각을 해 보았었는데 사실 우리는 모두 근본적으로 이타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니 앞으로가 더욱 희망적으로 느껴졌네요.
그리고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 등 성경과 미국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의 말을 인용하며 통상적으로 전해져오는 사랑의 원칙같은 것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관하여도 좋은 생각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진 9장 '전쟁과 평화의 신화'에서는 전쟁이 진정 불가피한 것인지 또는 평화를 위한 노력만 해도 될 것인지에 대해 현대까지도 중요한 질문들을 알아보았어요. 이 부분에서는 불교에서 "자연이 악한 것이 아니라 부처 의식의 '행위체'"라고 말한 표현을 인용하며 따라서 분쟁은 악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인상깊었네요.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일어난 전쟁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알아보니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주의,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신의 눈이요 귀요 생각이고 말이다.
그리고 행성이 날고 있는 (그리고 이제 우리와 같은 지구 사람들이 날고 있는) 우리 마음속의 무한한 우주에서 창조의 행위에 동참하고 있다."
책은 1969년 닐 암스트롱의 달 탐사를 주제로 우리 신화가 이제 무한한 우주와 우주의 빛의 신화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마무리 됩니다. 기원전 400년 고대 수메르문명의 천체 관측부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린 '달의 위상', 그리고 현대의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까지 시야를 널리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새로운 신화는 우리가 이 아름다운 별에서 자리다툼을 벌이는 자아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방된 마음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말처럼 혼란스러운 시간들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올곧게 하고싶은 모든 분들께 책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여담으로 저는 'Myths to live by'라는 같은 원제로 2004년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던 책을 읽어봤었기에 이번 더퀘스트에서 새로 나온 책을 함께 비교해볼 수 있었는데요. 더퀘스트의 책은 같은 부분을 2004년의 타 출판사 책, 그리고 원문과 비교해봐도 번역이 훨씬 매끄러워서 다소 어려운 내용들이지만 책을 속독해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네요. 그리고 책에서 훨씬 많은 부분들을 올 컬러 그림과 조각, 부조 작품들, 세계 각지의 사원 벽화 등 사진과 함께 실어놓았기 때문에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했습니다. 혹시 이전에 조지프 캠벨의 책을 읽어보셨던 분들이라도 요즘 더 중요해진 신화 속 이야기들을 새로운 더퀘스트 버전으로 만나보셨으면 좋겠네요!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책에 단순히 신화 이야기들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각종 문학과 철학, 사상들이 가득해서 가을날처럼 풍성한 교양을 가득 쌓으실 수 있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동서양 신화의 주요 밑바탕이 되는 성경과 쿠란 등을 빼놓을 수 없겠죠? 그리고 전쟁사에서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나타난 도교사상, '손자병법', 또 저는 이전에 제목만 들어봤던 '바가바드기타'를 함께 연결한 점도 흥미로웠어요. 내면의 정신세계 이야기에서는 심리학자 카를 융의 정신구조를 연관지어 해석했고, 고대 아즈텍 문명과 서구 전쟁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리아드'와 청동기시대 후기, 철기시대 초기 침략의 신화적 개념을 연결짓기도 했구요. 단테의 '신곡', 장 폴 사르트르와 버나드 쇼의 연극 작품들, T.S.엘리엇의 '황무지' 작품에서 시대 상황을 묘사할 때 썼던 표현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에서 그려지는 상징적인 이야기와 연결된 점이 문학 작품에 미친 신화의 영향을 아주 크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밖에 니체,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또 바그너의 오페라에 영감을 준 고트프리트 폰슈트라스부르크의 작품까지 음악과 철학 등 여러 방면에 신화는 함께 하고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이 중에 이름만 들어보거나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분들이 계시다면 책 속에서 조지프 캠벨과 함께 흥미진진한 만남을 가져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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