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부당합니다 - Z세대 공정의 기준에 대한 탐구
임홍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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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가 전국을 강타했을 때, 나 역시 그 책을 읽었다. 이 책, <그건 부당합니다>를 보고 저자의 이름이 익숙했던 건 그래서였다. 몇 년 전에 읽고 기억 저편에 보관해 둔 책의 저자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번에도 소위 말하는 '신세대', 더 정확히는 'Z세대'에 대한 분석을 들고 찾아왔다. 이 책은 Z세대, 그리고 공정에 관한 책이다. 확실히 공정이라는 키워드는 최근 몇 년 동안 갑자기 부상한 감이 있다. 사전적 의미의 공정을 마다하는 사람이 뭐 얼마나 되겠냐마는, 최근에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먼저 한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은 공정이라는 말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글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가끔은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참고로 말하자면, 상대방이 공정이라는 말을 왜곡해서 이해하고 있다거나, 내가 맞고 상대가 틀리다는 차원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나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공정이라는 개념이 일치하지 않고, 그래서 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헛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Z세대가 말하는 공정이라는 키워드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Z세대는 공정함을 원한다기보다는 부당함을 싫어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책 제목 역시 거기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싶다. 부당함을 싫어한다는 건 곧 반칙을 싫어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Z세대가 원하는 건,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내가 반칙을 당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보아도 크게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다양한 대입 전형,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팀의 남북단일팀 결성, 남북통일 등 최근에 이슈가 되는 모든 사회적 이슈에서 Z세대는 '반칙이 없는 것'을 원한다. 여기에서 반칙이라는 개념에 대한 범위 또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게 문제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여겨지는 저출생 현상 역시, 젊은 세대가 그게 합리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겪는 과정에서 부당함을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정이라는 개념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아직도 남들보다 쉽게 이득을 취하고, 남들을 부당하게 제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앞으로 나아가는 한 명에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남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사회의 시스템을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개인에게 쉽게 분노하면서 그 개인이 그러도록 허용하는 시스템에 눈감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의미있는 시사점이 많아서 한번 천천히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번에도 Z세대 본인들보다는 Z세대를 이해하려 드는 어른들에게 더 의미 있는 책일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과연 이 책을 읽고 Z세대가 무작정 이기적이며 뒤틀린 공정을 추구한다는 편견을 깨는 기성세대 어른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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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자의 일 -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일이삼 시리즈
최영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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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에 성실하게 종사해 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상세하고 솔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정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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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 유병재 대본집
유병재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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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은 아닌데 번뜩이는 재능이 있는 거 같긴 하다. 유병재라는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은 대강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트콤 <유니콘>에 관해서도 아주 큰 기대는 없었다.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요즘에는 꽤 힘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유병재가 극본을 썼다는 사실도 그리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니콘> 극본집은 재미있다. 극본집을 읽고 나니 시트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병재가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나? 이 정도였나? 싶었다. <유니콘>은 맥콤이라는 한 가상의 스타트업에 관한 시트콤이다. 서로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자며 사내에서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만, 대표 '스티브'는 새로 온 직원이 압존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지적한다. 사내에서만 사용하는 화폐를 만들자고 하더니, 명절 선물을 사내 화폐로 준다는 선언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사내 화폐라고 해서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스티브는 회사의 앞날을 위해 점쟁이를 찾아가는데, 점쟁이는 스티브의 '나무위키' 항목을 줄줄 읽고 스티브에 대해 잘 아는 척을 한다.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실소가 나오게 한다.

<유니콘>에는 온갖 인물이 등장한다. 돈에 미친, 30억을 벌고 은퇴하는 게 꿈이라서 앞으로 31억만 벌면 된다는 애슐리,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를 섭렵하고 소문들을 가장 빠르게 주워듣는 캐롤, 잘생기고 착하지만 유달리 멍청한 필립, 사실상 맥콤의 '실세'이기 때문에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개발팀의 곽성범. 비트코인을 7만 원에 샀다가 8만 원에 팔았다는, 그래서 이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 세계라고 믿는 태주까지. 꼴사나워 보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미워하기는 어려운, 욕하고 싶으면서도 왠지 정이 가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은 대체로 어디서 정말 본 것 같은 특징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저자가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맥콤은 '떡상'할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의문점이 든다. 스티브도 그렇고, 애슐리도 그렇고, 사람들의 목표는 결국 회사가 잘 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회사가 정말 잘 될지 영 믿음이 가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잘 되고 되지 않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뒷부분의 내용까지 다 쓸 수는 없으니 그 부분은 접어두고 생각하자. 처음에 책이 꽤 두껍다 싶었는데 읽다 보니 술술 넘어간다. 뒷 내용이 궁금하고, 이 회사에서 내일은 또 어떤 어이 없는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다.

극본집을 먼저 읽어 본 나와 달리 시트콤을 먼저 본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시트콤을 먼저 봤다면 극본집을 읽을 때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극본집을 다 읽었으니 시트콤을 볼 생각이다. 특히 극본집의 장점은 배우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인데, CEO인 스티브를 신하균이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읽으니까 스티브의 캐릭터가 더 재미있었다. 신하균을 캐스팅할 생각을 한 사람은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다. 하루 날 잡고 시트콤을 몰아서 봐야겠다. 맛있는 과자와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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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 - 방송월드에서 살아남은 예능생존자의 소름 돋는 현실고증
김주형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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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지옥에서 왔습니다>는 유명 PD의 에세이라는데, 저자의 이름이 낯설었다. 하지만 <런닝맨>의 '멱PD'라는 말을 들으니 아, 그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책에 딸린 추천사가 쟁쟁하다. 유재석, 이광수, 하하, 김종민이라니. 하긴, 런닝맨이나 인기가요, 가요대전을 연출한 PD라고 하면 유명인들과는 아무렇지 않게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일 것이다. 실제로 책에도 유재석에 관한 한 가지 일화가 실려 있다. 읽는 사람의 재미를 위해서 여기다가 쓰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 일화를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와...진짜 독하다. 유재석이 괜히 유재석이 아니구나...'

저자는 꽤 특이한 과거(?)를 보유하고 있다. 저자의 대학 시절 학부는 일단 전기전자전파공학부. PD라는 직업과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 느낌이다. 실제로 취업준비를 할 때 삼성전자와 SBS를 같이 썼는데, 둘 다 됐다고 한다. 한 군데도 붙기 힘든데 두 군데나 붙다니. 그리고 삼성을 걷어차고 방송국을 택하다니. 어쨌든 저자는 교양국을 거쳐 예능국으로 갔고, 예능국에서도 앞서 몇 개의 프로그램을 담당하다가 런닝맨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방송국에서 일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저자는 막내 스태프일 때 오전 4시 반에 출근을 했다고 한다. 학생 시절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다고 써 있는데, 방송국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나조차 그게 방송국의 본모습이 아니란 걸 안다. 근무 시간이 불규칙적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항상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 갑작스러운 상황을 수습해야 하고, 뒤처지면 안 되고 항상 유연해야 한다. 한 마디로 스트레스 많이 받고 '워라밸'이란 게 없는 직장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런 만큼 성공적인 작업물을 만들어냈을 때 성취감도 크고, 그 성취감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에게는 잘 맞는 직장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제 SBS에서 퇴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한국식 스탠딩 코미디라고 말이 많았던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도 저자가 연출했다고 한다.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면서 방송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에세이에는 그런 이야기도 실려 있으니, PD가 꿈이거나 방송 제작을 하고 싶은 사람이 읽어봐도 좋겠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법이나 일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기획안으로 연결한 예시 등도 잘 실려 있다. 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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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자의 정체 - 쓰며 그리며 달리며 우리의 자리
고기자 지음 / 편않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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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보고 듣는 이들은 어떤 것을 말하고 어떤 것을 말하지 않을지 항상 치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저자의 그런 깊은 고민과, 그럼에도 저자가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저자가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계속해서 글을 쓸 용기를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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