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 유병재 대본집
유병재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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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은 아닌데 번뜩이는 재능이 있는 거 같긴 하다. 유병재라는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은 대강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트콤 <유니콘>에 관해서도 아주 큰 기대는 없었다.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요즘에는 꽤 힘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유병재가 극본을 썼다는 사실도 그리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니콘> 극본집은 재미있다. 극본집을 읽고 나니 시트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병재가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나? 이 정도였나? 싶었다. <유니콘>은 맥콤이라는 한 가상의 스타트업에 관한 시트콤이다. 서로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자며 사내에서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만, 대표 '스티브'는 새로 온 직원이 압존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지적한다. 사내에서만 사용하는 화폐를 만들자고 하더니, 명절 선물을 사내 화폐로 준다는 선언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사내 화폐라고 해서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스티브는 회사의 앞날을 위해 점쟁이를 찾아가는데, 점쟁이는 스티브의 '나무위키' 항목을 줄줄 읽고 스티브에 대해 잘 아는 척을 한다.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실소가 나오게 한다.

<유니콘>에는 온갖 인물이 등장한다. 돈에 미친, 30억을 벌고 은퇴하는 게 꿈이라서 앞으로 31억만 벌면 된다는 애슐리,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를 섭렵하고 소문들을 가장 빠르게 주워듣는 캐롤, 잘생기고 착하지만 유달리 멍청한 필립, 사실상 맥콤의 '실세'이기 때문에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개발팀의 곽성범. 비트코인을 7만 원에 샀다가 8만 원에 팔았다는, 그래서 이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 가상 세계라고 믿는 태주까지. 꼴사나워 보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미워하기는 어려운, 욕하고 싶으면서도 왠지 정이 가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은 대체로 어디서 정말 본 것 같은 특징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저자가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맥콤은 '떡상'할 수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의문점이 든다. 스티브도 그렇고, 애슐리도 그렇고, 사람들의 목표는 결국 회사가 잘 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회사가 정말 잘 될지 영 믿음이 가질 않는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잘 되고 되지 않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뒷부분의 내용까지 다 쓸 수는 없으니 그 부분은 접어두고 생각하자. 처음에 책이 꽤 두껍다 싶었는데 읽다 보니 술술 넘어간다. 뒷 내용이 궁금하고, 이 회사에서 내일은 또 어떤 어이 없는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다.

극본집을 먼저 읽어 본 나와 달리 시트콤을 먼저 본 사람들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시트콤을 먼저 봤다면 극본집을 읽을 때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도 극본집을 다 읽었으니 시트콤을 볼 생각이다. 특히 극본집의 장점은 배우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인데, CEO인 스티브를 신하균이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읽으니까 스티브의 캐릭터가 더 재미있었다. 신하균을 캐스팅할 생각을 한 사람은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다. 하루 날 잡고 시트콤을 몰아서 봐야겠다. 맛있는 과자와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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