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와 어? 인문과 과학이 손을 잡다
권희민.주수자 지음 / 문학나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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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그리고 과학.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상극이라고 여긴다. 인터넷 상에는 사람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문이과 드립'이 성행한다. 물론 그런 농담이 언제나 재미 없기만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농담이 사람들을 너무 쉽게 문과형, 그리고 이과형으로 구분해 버리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 기준에 따르자면 나는 무조건 문과형으로 분류될 인간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이나 과학과는 담을 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물학자가 쓴 책을 읽으며 감탄하기도 하고,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아! 와 어?>는 각각 소설가와 물리학자인 두 명의 저자가 함께 쓴 책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별, 지구, 우주의 생성과 우주를 지배하는 기본 법칙, 지구 내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현상, 원자와 분자, 생명의 근원, 숫자의 논리와 아름다움을 과학에 흥미가 없는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이 이 책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아주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과학 서적은 아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과학 이야기를 늘어놓는 책이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파트는 DNA에 대해 이야기하는 '몸 안의 도서관'이었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저서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주를 도서관으로, 그리고 인간을 한 권의 책으로 비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책에서 "도서관이 아무리 거대하다 하더라도 똑같은 책은 없다"라는 문장을 인용한다.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DNA를 가진 인간은 없다는 뜻이겠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는 역시 지문이다. 세상에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조차 지문은 서로 다르다고 하니, 완전히 똑같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가 간다. 즉 나도, 이 책의 저자들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도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왠지 낭만적이다. 이 파트 외에 빛과 색에 대해 이야기한 '꽃과 색과 눈과 뇌'도 아주 재미있었다. 그 파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인간은 빨간색에서 보라색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색들이 균등하게 반사되는 빛을 하얗다고 인식한다. 곤충은 빨간색을 보지 못하고, 노란색에서 자외선까지 빛으로서 보기 때문에 곤충의 흰색은 노란색에서 자외선까지 포함된 빛이 균등하게 반사되는 색이다.' 되새겨 보면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개나리가 노란색이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개나리는 노란색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들마다 모두 다른 빛을 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같은 꽃을 보더라도 내가 보는 꽃과 고양이가 보는 꽃은 전혀 다른 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과학 지식을 다소 낭만적으로 다룬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내용들만 간단히 소개했지만, 다른 내용들 역시 죄다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었다. 과학 이야기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재들과 결부시켜 풀어 놓기 때문에 더 쉽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유익하게 시간 보내기 좋은 책을 찾는 사람이라면 <아! 와 어?>를 읽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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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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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마이클 샌델의 신간이다. 이번 책 <공정하다는 착각> 역시 정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능력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능력주의 신화란, '하면 된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사회는 나의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 줄 것이며, 내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능력주의란 자수성가 신화나 아메리칸 드림과도 연결되는 개념이다. 얼핏 듣기에 능력 있는 자라면 그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특히나 인종, 성별, 사회적 계급, 장애,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과 같은 수많은 요소들이 개인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는 요즘 사회에서는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샌델은 이 책에서 바로 그 능력주의 신화를 낱낱이 비판한다. 처음에는 책이 많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쉽게 읽혀서 신기했다.

능력주의에 대한 샌델의 비판은 간략하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현대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결코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샌델은 주로 미국의 예시를 근거들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한국 사회 역시 미국에 비해 딱히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이자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이야기는 미국의 대학 입시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먼저 거액의 기부금을 대가로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이들을 언급한다. 또 미국 전역을 뒤흔든 입시 부정 스캔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거기에도 물론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부자 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법적으로 및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정정당당하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 역시 경제적 불평등 구조 위에 서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해하기 아주 간단한 문제다. 명문대에 들어갈 만한 입시 스펙을 만들고, 입학 시험을 위한 '족집게 과외'를 받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명문대의 등록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하지 않으면 대학에 다니기 어렵다. 샌델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아이비리그 대학생 삼분의 이 이상이 소득 상위 20퍼센트 이상 가정의 출신임은 놀랄 일이 아니다. 프린스턴과 예일에는 미국의 소득 하위 60퍼센트 출신 학생보다 상위 1퍼센트 출신 학생이 더 많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두고 능력 있는 학생이라면 사회적 계급에 관계없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즉 능력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한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샌델이 정말 지적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 점이다. 능력주의 신화에는 분명한 허점이 있다. 능력주의는 각각의 개인이 갖는 능력에 따라 그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정당화한다. 개인의 능력을 완벽하게 계량화하는 게 가능하고, 그로 인해 누구나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충분히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사회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렇게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조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혹은 노력을 덜 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말해도 좋은 걸까? 고등 교육을 받아 변호사가 된 사람과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을 가지고 그 변호사가 일하는 빌딩을 청소하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사회가 과연 옳은 사회인가?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의 출신 성분이나 성별, 장애 등의 요소로 성공할 수 없는 사회는 불합리하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만을 보장하는 사회 역시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 능력주의가 보장하는 건 능력 있는 누군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이지, 필연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할 이들의 인생이 아니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현대 사회에 가져온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꼽는다. 트럼프의 당선 요인에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샌델은 그 중에서도 엘리트주의의 심화, 그리고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기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좌절과 그들이 품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의 화법, 그리고 힐러리와 트럼프의 화법과 그들의 지지층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는데,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밖에도 능력주의의 맹점을 하이에크의 자유시장 자유주의, 롤스의 복지국가 자유주의 이론과 엮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라서 읽으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읽다 보면 그래서 이 능력주의를 어떻게 타파하면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샌델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일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7장 마지막 문단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끈'이라니 참 좋은 말이다. 2020년 말에 이 책을 읽게 된 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즘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도 닥치는 대로 추천하고 있는데, 부족한 서평이나마 한 명이라도 더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는 데 기여하게 된다면 좋겠다. 2020년은 특히나 더 사회적 연대의 끈이 간절한 해였다. 더 많은 이들이 시민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다른 이들과 연결된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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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거절하기 - 너무 많은 물건으로부터 해방된 어느 가족의 도전기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박종대 옮김 / 양철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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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람들은 온갖 물건들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 사정이 허락한다면, 당장 어제 산 새 옷 열두 벌을 비닐 포장조차 뜯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 두고 새 옷을 또 살 수도 있다. 아직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들을 질렸다거나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쉽게 버릴 수도 있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고 또 쉽게 버릴 수 있는 건 옷뿐만 아니다. 가방이나 모자, 신발과 같은 잡화류는 물론이고 전자 제품이나 음식까지도 그렇다. <쓰레기 거절하기>의 저자 산드라 크라우트바슐은 모든 게 쉽게 버려지는 풍조에 반기를 든다. 저자의 전작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저자와 그의 가족들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해 보기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어떤 물건이든 비닐 포장이 빠지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유리병에 담긴 세제를 찾아 헤매고, 매번 채소를 담아 갈 종이 봉투나 바구니를 가지고 가게에 가는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플라스틱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냈고, 이제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거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을 담은 책이 <쓰레기 거절하기>다.

<쓰레기 거절하기>에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저자와 그 주변인들의 고군분투가 매우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저자의 친구는 음식들이 대규모로 버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 자원봉사자 그룹을 조직해서 대형 마트의 컨테이너 쓰레기통을 뒤지는 활동을 했다. 그렇게 구한 음식물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운동을 ‘덤스터 다이빙’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덤스터 다이빙 투어에 참가한 날, 마트의 음식물 쓰레기장에 들어간 저자는 거기가 마치 식품 창고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처음 포장된 상태 그대로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활동 중 ‘공짜 가게’에 대한 내용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공짜 가게는 저자가 지역 단위에서 열던 의류 교환 장터의 조금 더 발전된 방식이다. 누군가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공짜 가게에 기증하고, 누군가는 공짜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간다. 얼핏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가 떠오르기도 한다. 공짜 가게는 모든 것이 흘러 넘치는 과잉 상태에 대한 의식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물론 실질적으로 버려지는 물건들을 줄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모든 물건이 과잉 상태인 현대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해 본다. 저자가 어렸을 때는 집에서 쓰던 전자 제품이 고장 나면 어른들이 손수 고쳤다. 도서관에서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많은 책을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집에서 손수 만든 옷을 입었으며 헌 옷을 서로 물려주었다. 할머니 집 정원에서 자란 신선한 재료들로 요리를 해 먹었다. 그 시절에는 아무렇게나 입다 버리는 싸구려 티셔츠 같은 건 없었다. 인스턴트 식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저자가 지난 시절을 무작정 낭만화하고 예전이 지금보다 모든 면에서 나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저자의 어린 시절과 같은 생활 양식을 고려해 볼 법하다는 것이다. 개중 ‘할머니 집 정원에서 자란 과일’ 과 같이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는 터무니없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입을 수 있는 옷을 서로 바꿔 입거나 물려 입는 건 현대의 한국인들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필요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낭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더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낭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된다. <쓰레기 거절하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너무 많은 물건들로부터 벗어나는 데 성공한 한 가족의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서문 한 문단을 이용하며 글을 마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여러분에게 무슨 충고나 하자고 쓴 책이 아니다. 게다가 본래는 나올 필요도 없는 책이다. 그런데 나왔다. 이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필요한 건 모두 갖고 있는, 아니 보기에 따라선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 좋은 삶을 살아 보기로 결심하면서 다른 가족들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한 가족의 소박한 이야기이다. 그 가족은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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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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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시절부터 미술 교과서나 미술 분야의 책을 보는 걸 좋아했다. 미술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아는 그림이나 화가가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이런저런 그림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림들을 보다 보면 이유 없이 좋은 그림도 있고,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이상한 그림도 있고, 그림을 그린 사람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궁금해지는 그림도 있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는 단순히 그림을 구경하는 데서 한 발짝 나아가 미술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책이다. 책에는 365점의 그림, 그리고 각 그림 자체나 그림을 그린 화가, 그림에 사용된 기법,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내용에 대해 아주 깊이 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에 미술 교양 입문서로 읽기 좋다. 아무래도 실린 내용이 많다 보니 하루만에 읽고 넘어갈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책 맨 앞 장에는 이 책을 하루에 한 장씩 읽고 체크할 수 있도록 체크페이지가 붙어 있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은데, 전부 다 적을 수는 없으니 몇 가지만 짤막하게 언급해 볼까 한다. 먼저 누드화에 대한 이야기다.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작품들 중에서도 여성의 누드를 그린 작품들이 적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의 서거 이후 귀족들의 힘이 강해지면서 관능적이고 향락적인 미술이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성의 누드화가 그 관능적이고 향락적인 미술의 예시라 할 수 있다. 여성의 누드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주로 다룬 소재 중 하나가 바로 신화다. 신화 속의 한 장면이나 여신의 모습을 그린다는 명목 하에서 여성의 누드를 마음껏(?)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소비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름답고 때로는 신성하다는 느낌까지 주던 그림들에 그런 뒷배경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당시의 감상자들은 누드 속 여성이 감상자에게, 즉 화면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그림들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더 그렇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배웠던 화가들은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카미유 클로델이나 프리다 칼로 정도가 예외였을 뿐이다. 물론 내가 배운 미술 지식들은 아주 기초적인 겉 핥기 수준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겠지만, 좋은 작품을 남긴 여성 화가들은 없을까? 하는 마음에 내심 아쉽기도 했었다. 이 책에서는 여성 화가들에 대해서도 꽤 많이 다루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카미유 클로델과 프리다 칼로는 당연히 빠지지 않는다. 그 밖에도 프랑스 왕립미술아카데미의 회원이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30점 정도나 그렸다는 비제 르브룅의 생애, 여성 최초로 이탈리아 미술아카데미의 회원이 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그의 작품 <유디트>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인 야코포 로부스티의 그림을 대부분 대신 그려 주었다는 의혹이 있는 마리에타 로부스티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시 여성 화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영국 왕립미술아카데미의 창립 회원이었던 앙겔리카 카우프만 역시 언급된다. 읽다 보면 느끼겠지만 어지간한 여성 화가들은 대체로 큰 미술아카데미의 회원이다. 당시에도 그 정도로 이름을 날린 여성 화가들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건가 생각해 보면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에는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나 작품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역시 소개되어 있다. 나는 <모나리자>가 한 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고 놀랐다. 책에 따르면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거의 비슷한 또 한 점의 모나리자가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추측하기로는 다빈치의 제자들 중 하나가 그린 그림 같다는 모양이다. 프라도의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루브르에 있는 모나리자를 그릴 때 진행한 과정과 동일한 과정을 밟아 그려진 그림이다. 이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달리 배경까지 제대로 완성되어 있다. 이렇게 유명한 작품들이 그려질 때의 사회적 배경, 화가의 사생활, 잘 알려진 작품의 모델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읽는 사람이 지적 교양을 착실히 쌓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미술은 모르면 안 보이는,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좋아지는 매력적인 신세계'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전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그림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 그림 한 점에 담겨 있을 누군가의 삶이나 사고방식,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의 세계에 대해 무시하고 지나가기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하루에 한 장씩 부담 없이 읽어도 좋고, 기분이 내키는 날 후루룩 읽어 내려가도 좋을 책이다. 나처럼 즐겁게 미술 교양을 쌓고 싶은 사람들에게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가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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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알아두면 시리즈 2
디아나 헬프리히 지음, 이지윤 옮김, 황완균 감수 / 지식너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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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약에 아예 의존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안티백서들이나 의약품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이따금 최소 한두 가지의 약을 먹을 것이다. 감기약이나 알러지 약처럼 비교적 흔히들 먹는 약부터,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받을 수 없는 약, 각종 성분이 든 영양제까지. 나는 가끔 수면제를 먹고, 거의 매일 두어 종류의 영양제를 먹으며, 의사의 처방을 받아 또 두어 종류의 약을 먹는다. 전적으로 의사의 처방을 믿는 편이고 아직까지 먹는 약과 관련해서 큰 문제가 일어난 적은 없다. 하지만 계속 약을 먹다 보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 약들이 잘 일하고 있는 건지, 내가 약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잘 먹고 있는 건지, 이 약이 정확히 내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등. <약,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는 의약과 관련된 지식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약사인 저자가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들부터, 약과 관련된 소소하고 잡다한 이야기까지 실려 있다. 그리 어렵지는 않고 빠르게 읽히는 책이다.

나는 수면제를 먹고 있기 때문에 파트 5인 '불안과 수면 장애에 관한 약 상식'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수면제를 먹어 봤거나 수면제를 먹을까 고려해 본 사람이라면 수면 장애나 수면제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내성이 생겨서 끊기 힘들어지고 점점 더 강한 수면제를 먹어야 한다거나, 수면 장애는 의지의 문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물론 저자의 말에 따르면 나쁜 부작용이 아예 없는 약 같은 건 이 세상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기 전에는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그렇지만 '수면제에 엄청난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밤에 잠을 얼마나 설치든, 그래서 생활에 얼마나 큰 지장을 입든 상관없이 수면제 복용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런 태도가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나 역시 수면제를 복용하고 나서 놀라울 정도로 생활이 회복된 사람으로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물론 수면제를 먹기 전에 시도해 볼 만한 일들이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수면제는 플라시보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한다. 수면 위생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명상 등으로 이완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저자는 그런 방법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로도 효과가 없다면 약을 먹어야 한다. 물론 장기 복용은 그리 좋지 않겠지만.

그 밖에도 두통의 종류와 각각의 두통에 잘 듣는 약은 무엇인지, 소화 불량이나 피부염, 감기에는 어떠한 약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들도 실려 있다. 파트 중간중간의 '조제실에서 조잘조잘'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페이지는 약에 관한 잡다한 상식들을 이야기하는 곳이다. 제목만 봐도 '어린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왜 약국에서 젤리를 팔까?' '유효 기간이 지난 약을 먹어도 될까' 등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결론만 간단하게 적자면, 유효 기간이 지난 약은 당연히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복용량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건 어른 역시 마찬가지지만, 어린아이에게는 특히나 더 철저해야 한다. 많은 약들은 두 살 정도의 어린아이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어린아이의 간과 신장은 아직 성인처럼 작동하지 않고, 체내 근육과 지방 대 수분의 비율도 다르다.' 그 밖에도 의약품은 어떻게 폐기해야 하는지, 어디에 보관해야 하는지도 나온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저자가 항상 구비해 두고 있는 가정용, 여행용 상비약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따뜻한 물을 넣어 온찜질을 하기 위한 물주머니를 아주 좋아하는데, 냉찜질이나 온찜질은 상당수의 사소한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물주머니를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저자의 물주머니 선호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모양이다. 의약품과 관련된 상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소한 의약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은 <약,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를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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