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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평점 :
<정의란 무엇인가>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마이클 샌델의 신간이다. 이번 책 <공정하다는 착각> 역시 정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능력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다. 능력주의 신화란, '하면 된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사회는 나의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 줄 것이며, 내가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능력주의란 자수성가 신화나 아메리칸 드림과도 연결되는 개념이다. 얼핏 듣기에 능력 있는 자라면 그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사회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특히나 인종, 성별, 사회적 계급, 장애,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과 같은 수많은 요소들이 개인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는 요즘 사회에서는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샌델은 이 책에서 바로 그 능력주의 신화를 낱낱이 비판한다. 처음에는 책이 많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쉽게 읽혀서 신기했다.
능력주의에 대한 샌델의 비판은 간략하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현대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결코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샌델은 주로 미국의 예시를 근거들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한국 사회 역시 미국에 비해 딱히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이자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이야기는 미국의 대학 입시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먼저 거액의 기부금을 대가로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이들을 언급한다. 또 미국 전역을 뒤흔든 입시 부정 스캔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거기에도 물론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부자 부모들은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금액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법적으로 및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정정당당하게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 역시 경제적 불평등 구조 위에 서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해하기 아주 간단한 문제다. 명문대에 들어갈 만한 입시 스펙을 만들고, 입학 시험을 위한 '족집게 과외'를 받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명문대의 등록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하지 않으면 대학에 다니기 어렵다. 샌델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아이비리그 대학생 삼분의 이 이상이 소득 상위 20퍼센트 이상 가정의 출신임은 놀랄 일이 아니다. 프린스턴과 예일에는 미국의 소득 하위 60퍼센트 출신 학생보다 상위 1퍼센트 출신 학생이 더 많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두고 능력 있는 학생이라면 사회적 계급에 관계없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비슷하다. 즉 능력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한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샌델이 정말 지적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 점이다. 능력주의 신화에는 분명한 허점이 있다. 능력주의는 각각의 개인이 갖는 능력에 따라 그 개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정당화한다. 개인의 능력을 완벽하게 계량화하는 게 가능하고, 그로 인해 누구나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충분히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는 사회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렇게 능력주의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조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혹은 노력을 덜 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말해도 좋은 걸까? 고등 교육을 받아 변호사가 된 사람과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을 가지고 그 변호사가 일하는 빌딩을 청소하는 사람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사회가 과연 옳은 사회인가? 물론, 능력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의 출신 성분이나 성별, 장애 등의 요소로 성공할 수 없는 사회는 불합리하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만을 보장하는 사회 역시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 능력주의가 보장하는 건 능력 있는 누군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올라갈 가능성이지, 필연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할 이들의 인생이 아니다.
샌델은 능력주의가 현대 사회에 가져온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대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꼽는다. 트럼프의 당선 요인에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샌델은 그 중에서도 엘리트주의의 심화, 그리고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자기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좌절과 그들이 품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의 화법, 그리고 힐러리와 트럼프의 화법과 그들의 지지층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는데,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 밖에도 능력주의의 맹점을 하이에크의 자유시장 자유주의, 롤스의 복지국가 자유주의 이론과 엮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라서 읽으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을 읽다 보면 그래서 이 능력주의를 어떻게 타파하면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샌델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일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7장 마지막 문단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끈'이라니 참 좋은 말이다. 2020년 말에 이 책을 읽게 된 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즘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도 닥치는 대로 추천하고 있는데, 부족한 서평이나마 한 명이라도 더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는 데 기여하게 된다면 좋겠다. 2020년은 특히나 더 사회적 연대의 끈이 간절한 해였다. 더 많은 이들이 시민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다른 이들과 연결된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