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속 파괴적 승자들
김광석.설지훈 지음 / 와이즈베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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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속 : 파괴적 승자들>은 '속도의 경제'라는 개념을 다루는 디지털 경제학 서적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아이디어를 선점하여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이가 승자가 되는 시대가 왔다. 초가속이란 빠르게 속도를 올려서, 뒤처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시대의 승자들을 파괴자라고 부르는데, 기존의 루틴을 파괴하여 변화를 선도한다는 의미로 그런 호칭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파괴자들이 누구고, 또 어떤 식으로 기존의 업계를 파괴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는지, 디지털 경제를 이끄는 6가지 파괴적 물결은 각각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개인과 기업이 어떻게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테슬라, 아마존, 스타벅스, 나이키 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읽기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은 편이다.

요즘은 OTT 서비스의 시대다. 애플이나 디즈니까지 여기에 뛰어들면서 이제 도대체 몇 가지를 구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정을 부리는 사람들도 많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서비스만 해도 몇 가지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OTT 서비스의 선두주자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넷플릭스의 등장은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내가 보고 싶은 컨텐츠를 하나하나 찾아다니지 않고 한 군데에서 모아서 볼 수 있다니. 결제도 하나하나 할 필요 없이 구독만 걸어 두면 매달 자동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컨텐츠를 한 군데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많이 퇴색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플랫폼에서 추가적으로 OTT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넷플릭스에서 빠져 버린 컨텐츠가 상당히 많으니까. 하지만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컨텐츠를 제작함으로써 단지 OTT 플랫폼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선택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국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 역시 넷플릭스가 투자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다.

책에 소개된 예시 중에 신기했던 걸 하나만 꼽자면 역시 바이두의 안면인식 기술이라고 하겠다. 바이두의 안면인식 기술은 ATM에서 얼굴 인식으로 현금을 출력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을까 싶어 걱정스럽지만 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상용화가 되었겠지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고객이 패스트푸드점 문 안으로 들어서면 고객의 외모, 인상착의를 통해 나이와 성별을 추론해서 메뉴를 추천하는 서비스도 도입되었다고 한다. 두 번 이상 방문한 고객의 얼굴은 키오스크가 기억하도록 되어 있어서, 이전에 주문했던 음식이나 좋아할 것 같은 메뉴를 추천해 준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긴 한데 왠지 좀 무섭기도 하다. 내가 언제 KFC를 방문했는지 기계가 다 알고 있다니. SF 소설에서나 읽었던 일들이 현실에서도 가능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디지털 경제를 이끄는 6가지 파괴적 물결을 각각 비대면화, 탈경계화, 초맞춤화, 서비스화, 실시간화, 초실감화라고 소개한다. 보기만 해도 어떤 개념인지 대강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고, 책으로 직접 읽어 보는 게 더 좋으니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초실감화 파트에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일본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치 오프라인처럼 안경을 써 볼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얼굴형이나 헤어스타일에 맞춰 어울리는 안경테를 소개해 주기 때문에 실제로 가게에 방문하지 않아도 비교적 편하게 안경을 구입할 수 있는 모양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이미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밖에도 온라인 여행과 같은 서비스도 소개되어 있었는데, 솔직히 온라인으로 이용하면 좋은 서비스들이 참 많지만 여행은 그냥 직접 가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초가속의 시대에서는 모든 정보와 데이터들이 넘쳐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중에 나에게 필요하고 유효한 정보가 무엇인지 찾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찾고, 그 데이터의 맥락을 이해하여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저자는 협업 능력을 강조하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술, 로봇, 사물 등 함께 일하는 업무 환경에서 상호작용하는 모든 대상과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새삼 의사 소통의 중요성이 더 강해지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의 대상이 인간으로 한정되지 않을 뿐이다. <초가속 : 파괴적 승자들>은 디지털 경제에 대해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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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2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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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취미에는 권태기가 오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즐겁고 재미있던 일들도 어느 날 문득 귀찮고 지겨워진다. 그 시기를 잘 극복하면 그 취미는 계속되는 거고, 그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취미를 접게 된다. 문제는 그 취미가 동물이나 식물처럼 살아 있는 생명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에는 질린다고 던져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물고기 돌보는 게 예전처럼 즐겁지 않고 물고기 밥을 안 주고 물을 안 갈아 주면 안 되니까. 내가 마음 같아서는 식물을 마구 들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순간 충동에 휩쓸려서 마구 일을 벌였다가 나중에 책임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가드너들은 식물 돌보는 취미에 오는 권태기를 '식태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식덕질에 푹 빠져 식물 만화를 그리고 2권까지 출판을 하게 된 마일로 작가조차 식태기를 피해 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다른 취미와 비슷하게 식태기가 오는 건 보통 가드닝이 잘 풀리지 않을 때다.

중요한 건 식태기가 아니라, 어떨 때 가드닝이 잘 풀리지 않는가이다. 식물에 벌레가 꼬이거나, 겨울에 너무 춥거나 여름에 장마가 지속되면서 식물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지거나, 식물들이 곰팡이병 등 병에 걸리면 가드닝이 힘들어진다. 한국은 계절별로 기온이나 습도 편차가 커서 식물들도 당연히 계절을 타게 된다고 한다. 물론 갖가지 장비들로 환경을 맞춰 줄 수는 있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적응력이 뛰어나고 강인한 식물을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초보자가 기르기 쉬운 강인한 식물은 뭘까? 정보 자체는 굉장히 많다. 포털 사이트에 초보자가 기르기 쉬운 식물이라고 검색하면 온갖 식물이 다 나온다. 나도 몇 번 시도해 봤다가 적지 않은 식물을 죽였다. 또, 어디에는 기르기 쉽다고 나와 있는 식물이 또 다른 글을 보면 초보자에게 까다로운 식물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도대체 뭘 믿어야 할까? 정말 기르기 쉬운 식물은 없을까? 식물을 기르고 싶은 초보자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추천하는 '기르기 쉬운 식물' 에 대해 나도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그 식물은 바로 스킨답서스다. 스킨답서스는 내가 가장 오래 기른 식물이었다. 처음에는 어항에 넣을 용도로 하나를 샀는데, 점점 커지고 증식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커지고 나니까 오히려 관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식물이 대품이 되면 관리하기가 쉬워진다는데, 나는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쌓이지 않은 채로 스킨답서스가 혼자 무럭무럭 자라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처지였다. 하여튼 스킨답서스는 정말 잘 자란다. 볕이 잘 들지 않아도 잘 자라고, 물에 꽂으면 말도 안 되게 잘 자라고, 비료를 안 줬는데도 잘 자란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식물을 기름으로써 식물 기르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싶은 사람에게는 스킨답서스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2권에서는 흙을 직접 만드는 법, 비료의 종류와 장단점, 물 주는 법, 분갈이 할 때의 구체적인 팁 등 식물을 제대로 기르고 싶은데 아직 아는 게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료라고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받고는 했는데, 식물을 잘 기르는 데는 비료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비료를 잘 주면 식물이 거의 사람이 약물로 도핑하듯 성장한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식물들은 빗물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 사실도 꽤 놀라웠는데 나한테 비는 산성비, 화학물질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불확실한 인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이 참 많다. 식물을 들이면 비료를 사고 빗물을 받아서 줘야지.

<크레이지 가드너> 1권에서 게발선인장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게발선인장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는데, 지나가듯 이야기를 했더니 누가 새끼 게발선인장을 나눠 주겠다고 해서 올해도 결국 다시 화분을 들일 것 같다. 작년에 죽인 오렌지자스민에게 문득 미안해진다. 이번에는 제발 잘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크레이지 가드너> 2권을 보면서 배를 잡고 웃은 장면이 몇 장면 있는데, 여기 찍어 올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나중에 느낄 즐거움으로 아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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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 아주 작은 수고로 생애 최정점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이승훈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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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학 서적을 잘 읽지 않는다. 매번 서평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것 같긴 한데 사실이다. 의학 서적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보통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를 펼칠 때도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다 읽었다. 전문적인 내용을 쉽고 공감이 가는 문장들로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물론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다루는 만큼 읽기에 아주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읽어 두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열심히 읽었다.

책에는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내용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 중 하나인 뇌졸중에 대한 정보는 거의 대부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뇌졸중은 물론 중대한 병이지만, 뇌졸중 환자 중 대다수는 병을 앓기 전과 같은 상태로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저자는 뇌졸중 전문의다). 저자는 한국인들이 뇌졸중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것이 있지 않을지 추측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중병을 앓아 목숨을 잃는 것도 물론 두렵지만, 건강하지 못한 채로 오래 살면서 고통을 받고 돈을 쓰는 것 역시 두려우니까.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본인이 마주치는 뇌졸중 환자들에게 종종 "지금이 최악입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환자가 의사를 만났을 당시가 최악의 상태고, 적절한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 병이 뇌졸중이라는 것이다. 뇌졸중 전문의로 살아가다 보면 뇌졸중 발병에 대한 큰 두려움을 품은 환자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 모양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뇌졸중은 관리할 수 있는 병이고, 발병 이후에도 충분히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병이라고 하니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어느 병이든 걸리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어느 병이든 걸리지 않는 게 제일 좋다. 아마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가는 건,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병을 앓으며 살아간다. 흔하게 걸리는 감기도 그렇고, 현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드문 질병이 아닌 위염과 식도염, 하다못해 안구건조증 같은 병도 병이다. 그렇지만 내가 안구건조증에 걸렸다고 해서 일상을 살아갈 수 없는 건 아니다. 조금 불편하지만 적당히 관리를 하면서 살아가면 일상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건강을 관리하는 법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누구나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부분들이다. 이를테면 규칙적인 운동, 금연, 절주 등이다. 조금 특이한 점은 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걸리는 사람도 있는 아주 흔한 질병이다. 사실 가벼운 감기는 학교에 가거나 일을 하는 데 그리 큰 불편을 끼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감기에 걸린다면 어떨까? 누구나 중요한 시험, 발표, 면접이나 결혼식 같은 자리에서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적어도 며칠간은 감기 안 걸리기' 라는 파트가 있다. 그 파트에는 인생의 중대사를 앞두고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감기를 피하는 방법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나도 이 정보들이 필요할 때는 한 번 실행에 옮겨 볼 생각이다. 다 적지는 않겠지만 책의 띠지에도 나와 있는 내용 하나만 언급하자면, 깨끗한 손으로 코 속을 닦는 게 감기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책에서는 당연히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에 대해서도 다룬다. 결론만 말하자면 크릴오일은 먹지 마라. 먹을 필요가 없으니까. 평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영양소를 섭취하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굳이 별도로 영양제를 먹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하는 이유로 영양 상태가 다소 불균형한 상황에서는 오메가3 등의 영양제를 먹는 게 당연히 도움이 된다. 다이어트를 할 때 오메가3를 먹으면 좋다는 말은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들은 이야기였는데, 이 책에 똑같은 말이 실려 있어서 신기했다. 전문가들이 검증(?)한 내용이니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라면 영양제를 좀 챙겨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의료인으로서 가진 책임감이 좋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가지는 과도한 공포심을 잠재워 주려고 노력하고, 의사와 약을 믿어야 할 이유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려고 한다. 요즘에는 약물에 대한 불신 때문에 약을 먹지 않아 더 심각한 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약을 먹는 게 전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사정은 있으니 누군가는 의사를 믿지 못할 만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의사, 믿을 만한 의사는 분명히 많다. '나를 포함해 언론이나 방송에서 떠드는 의사들은 믿지 마라' 라는 문장을 읽으며 저자가 쓴 이 책에 더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면 나는 저자의 의도를 거스른 독자일까? 어쨌든 <병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는 일반인이 쉽고 재미있게 읽기 좋은 의학 서적이다. 특히 건강 염려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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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계절의 여행 - 인생의 여행길에서 만난 노시인과 청년화가의 하모니
나태주 지음, 유라 그림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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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후기를 쓸 때마다 고민하는 점이 하나 있다. 시 본문을 후기에 어디까지 써도 좋은가이다. 사실 다른 책 서평을 쓸 때도 똑같이 고민하지만, 내가 정해 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소설의 경우에는 서평을 읽는 사람이 흥미를 느낄 만한 정보나 줄거리의 앞부분만을 소개하고, 치명적인 반전이나 결말은 가능한 한 절대 쓰지 않는다. 주제의식이나 내가 느낀 감상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서술하되 내용 본문을 너무 많이 발췌하지 않도록 신경쓴다. 기타 교양서적도 비슷한 기준으로 글을 쓰는데, 후기랍시고 본문 내용을 거의 다 줄줄 적어놓는 건 서평이 아닐뿐더러 원작자의 저작권을 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집 후기를 쓸 때가 가장 고민이 된다. 좋은 구절을 적어서 이 시인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시의 경우 소설보다도 내용이 짧기 때문에 너무 많은 부분을 적게 되면 읽는 사람이 굳이 시집을 돈 주고 살 필요가 없다. 이번에 서평을 쓰게 된 책도 시화집이라서 충분한 고민을 한 끝에 글을 쓴다. 일단 이 글에서는 시의 본문을 절대 쓰지 않고 내 감상이나 좋았던 문장 한두 문장 정도만 쓸까 한다.

나태주는 아주아주 유명한 시 '풀꽃'을 쓴 사람이다. 유라는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였다. <서로 다른 계절의 여행>은 나태주가 시를 쓰고 유라가 그림을 그린 시화집이다. 두 작가의 조합이 특이하기도 하고 작년에 나태주 시인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었던 터라 흥미롭게 독서를 시작했다.

서러운 대로 인생은 아리땁기도 한 것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문장이었다. 시집을 읽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이따금 이런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문장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시집을 읽는다. 하루가 힘들다가도 퇴근하는 길에 날씨가 맑아 하늘이 예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게 사람이다.

네 생각만으로도

살아야겠다는

싱그런 결의가 생긴다

문장들을 읽다 보면 내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나이가 많은 시인이 긴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시를 쓴다는 말도 일리가 있고, 젊은 시인이 신선한 발상을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일단 오랫동안 자신과 주변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글을 써 온 사람들의 문장에 깊이가 있는 건 맞다고 생각한다. 나태주의 문장은 그런 문장이다. 깊이가 있고 공감하게 된다. 잔잔하게 위로를 준다. 유라의 그림들 역시 시와 잘 어울려서 두 사람의 조합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 년에 한 권 정도는 읽곤 하는데, 올해의 시작을 함께하기에 적절한 책이었다. 후루룩 한 번 훑어보았는데 찬찬히 한 번 더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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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1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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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에 오렌지자스민 하나를 죽였다. 식물을 잘 길러봐야지 하고 선물받아서 집에 온 지 며칠만에 꽃까지 피웠는데, 갑자기 언제부터인가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물을 못 먹어서 이런 건지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과습으로 이런 건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는 도박을 하는 마음으로 물을 잔뜩 주든지 아니면 물을 주지 않고 놔둬야 하는데, 보통 나 같은 원예 초보자들은 전자를 택한다. 그리고 망한다. 하여튼 오렌지자스민이 죽은 뒤에 죄책감을 느껴서 당분간은 식물을 기르지 않기로 했다.

<크레이지 가드너>는 <극한견주>로 잘 알려진 마일로 작가의 최신작이다. 특유의 유머감각을 곁들이면서도 원예 초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이 꽤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벌레들이 귀엽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진딧물, 응애, 뿌리파리를 그렸는데 현실적으로 그렸다면 거기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일로 작가 특유의 그림체로 귀엽게 그려져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소소하게 식물을 키울 때도 도저히 뿌리파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식물 갯수를 늘리지 않았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뿌리파리를 잡기 위해서는 농약을 써야 한다고 한다. 파리 자체는 살충제만 뿌려도 죽지만 파리 애벌레가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는다는 모양이다. 화분 몇 개를 건사하기 위해 농약까지 쳐야 하다니... 하지만 벌레들과 같이 살 자신도 없을뿐더러 뿌리파리가 있으면 식물을 제대로 기를 수가 없다. 식물이 많은 사람들은 해충별로 잘 듣는 살충제와 농약을 구비해 두고 쓰는 것 같았다.


취미로 화분 몇 개 정도 길러본 입장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같은 식물들도 잎에 흰색이 섞여 있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가격과 생육 난이도가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식물에도 '신상'과 같은 유행이 있고, 수입되는 식물들은 통관 여부에 따라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식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확실히 플랜테리어가 트렌드긴 하구나 싶었다. 기르기 쉬운 식물들, 특이하게 생긴 식물들, 유행하는 식물들에 대해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개그만화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특성상 식물들의 특징을 매우 잘 잡아서 그리기 때문에 그림만 봐도 식물의 실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예전에 기르던 다육 몇 개는 그래도 몇 년 동안 잘 살아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지는 못했다. 작년에 오렌지자스민을 죽인 뒤로는 왠지 죄책감도 들고 자신이 없어서 새로운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있게 만화를 보다 보니 다시 식물을 길러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게발선인장을 키우고 싶은데 조금 촌스러운 이미지인가 고민하는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가면 커다란 게발선인장이 여러 개 있었는데, 선명한 색의 꽃을 피우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크고 나서 나도 게발선인장을 길러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요즘에는 기르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작가의 결론은 본인이 기르고 싶으니 기르겠다는 거였다. 매우 기르기 쉬운 식물이니 식물을 많이 길러 본 적이 없는 초보자들에게 추천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르기 쉽다는 식물도 죽이는 나에게는 역시 마리모가 딱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마리모만 기르고 있다. 이 책에도 마리모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실려 있는데, 작가가 과거에 실수로 마리모를 찢어 죽였다는 이야기다. 가짜 마리모가 워낙 많기도 하고 한 달이 넘게 물을 갈아 주지 않았는데도 마리모가 너무 멀쩡해 보여서 반으로 찢어 살펴보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마리모가 갈색으로 변해 죽어 있었다고 한다(책에도 언급되지만 사실 찢겨 죽은 건 아니고 말라 죽은 거다). 사실은 나도 내가 기르는 마리모가 가짜가 아닌지 3년 동안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혹시 진짜면 미안하니까 찢어 죽이지는 말고 물을 열심히 갈아줘야겠다.

결국 책을 읽다가 게발선인장이며 리톱스, 칼큘러스 등등 온갖 식물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한참 동안 사진을 봤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기르고 싶기도 하고, 막상 기르려고 집에 들이면 분갈이며 물주기며 벌레며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렇다.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식물을 집에 들이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야겠다. <크레이지 가드너>는 이제 1권이 출간되었는데, 뒷 내용과 이런저런 다른 내용들이 궁금해져서 웹 연재분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 기르는 취미를 갖고 있거나,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고 워낙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읽다 보면 웃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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