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가드너 1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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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에 오렌지자스민 하나를 죽였다. 식물을 잘 길러봐야지 하고 선물받아서 집에 온 지 며칠만에 꽃까지 피웠는데, 갑자기 언제부터인가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물을 못 먹어서 이런 건지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과습으로 이런 건지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는 도박을 하는 마음으로 물을 잔뜩 주든지 아니면 물을 주지 않고 놔둬야 하는데, 보통 나 같은 원예 초보자들은 전자를 택한다. 그리고 망한다. 하여튼 오렌지자스민이 죽은 뒤에 죄책감을 느껴서 당분간은 식물을 기르지 않기로 했다.

<크레이지 가드너>는 <극한견주>로 잘 알려진 마일로 작가의 최신작이다. 특유의 유머감각을 곁들이면서도 원예 초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이 꽤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벌레들이 귀엽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진딧물, 응애, 뿌리파리를 그렸는데 현실적으로 그렸다면 거기서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일로 작가 특유의 그림체로 귀엽게 그려져 있어서 거부감이 없었다. 내가 소소하게 식물을 키울 때도 도저히 뿌리파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식물 갯수를 늘리지 않았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뿌리파리를 잡기 위해서는 농약을 써야 한다고 한다. 파리 자체는 살충제만 뿌려도 죽지만 파리 애벌레가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는다는 모양이다. 화분 몇 개를 건사하기 위해 농약까지 쳐야 하다니... 하지만 벌레들과 같이 살 자신도 없을뿐더러 뿌리파리가 있으면 식물을 제대로 기를 수가 없다. 식물이 많은 사람들은 해충별로 잘 듣는 살충제와 농약을 구비해 두고 쓰는 것 같았다.


취미로 화분 몇 개 정도 길러본 입장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같은 식물들도 잎에 흰색이 섞여 있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가격과 생육 난이도가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식물에도 '신상'과 같은 유행이 있고, 수입되는 식물들은 통관 여부에 따라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식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확실히 플랜테리어가 트렌드긴 하구나 싶었다. 기르기 쉬운 식물들, 특이하게 생긴 식물들, 유행하는 식물들에 대해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개그만화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특성상 식물들의 특징을 매우 잘 잡아서 그리기 때문에 그림만 봐도 식물의 실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예전에 기르던 다육 몇 개는 그래도 몇 년 동안 잘 살아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지는 못했다. 작년에 오렌지자스민을 죽인 뒤로는 왠지 죄책감도 들고 자신이 없어서 새로운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있게 만화를 보다 보니 다시 식물을 길러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게발선인장을 키우고 싶은데 조금 촌스러운 이미지인가 고민하는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가면 커다란 게발선인장이 여러 개 있었는데, 선명한 색의 꽃을 피우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크고 나서 나도 게발선인장을 길러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요즘에는 기르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작가의 결론은 본인이 기르고 싶으니 기르겠다는 거였다. 매우 기르기 쉬운 식물이니 식물을 많이 길러 본 적이 없는 초보자들에게 추천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르기 쉽다는 식물도 죽이는 나에게는 역시 마리모가 딱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마리모만 기르고 있다. 이 책에도 마리모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실려 있는데, 작가가 과거에 실수로 마리모를 찢어 죽였다는 이야기다. 가짜 마리모가 워낙 많기도 하고 한 달이 넘게 물을 갈아 주지 않았는데도 마리모가 너무 멀쩡해 보여서 반으로 찢어 살펴보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마리모가 갈색으로 변해 죽어 있었다고 한다(책에도 언급되지만 사실 찢겨 죽은 건 아니고 말라 죽은 거다). 사실은 나도 내가 기르는 마리모가 가짜가 아닌지 3년 동안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혹시 진짜면 미안하니까 찢어 죽이지는 말고 물을 열심히 갈아줘야겠다.

결국 책을 읽다가 게발선인장이며 리톱스, 칼큘러스 등등 온갖 식물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서 한참 동안 사진을 봤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기르고 싶기도 하고, 막상 기르려고 집에 들이면 분갈이며 물주기며 벌레며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렇다.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식물을 집에 들이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야겠다. <크레이지 가드너>는 이제 1권이 출간되었는데, 뒷 내용과 이런저런 다른 내용들이 궁금해져서 웹 연재분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물 기르는 취미를 갖고 있거나,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고 워낙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읽다 보면 웃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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