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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교사의 삶으로 다가오다 - 교사에게 그림책이 필요한 순간
김준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4월
평점 :
인사기록카드를 볼 때마다 놀란다. 내가 어느새 이 많은 세월을 교사로 살았나 싶어서다. 학기 단위로 삶을 살다보니 교사들은 자기 나이를 자주 잊는다고 한다. 나 또한 교사가 된 후 내 나이 앞자리 수가 벌써 4번째 바뀌고 있지만 실감을 못하고 있다(물론 거울을 볼 때는 실감 이상이지만).
난 늘 무서운 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알아서 4학년 밑으로는 거의 내려가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초등학교 학년 중 절반은 성격상 맡기가 어렵기에 내가 원하는 학년에 가고자 부장도 자처해서 한다. 그러다보니 늘 바쁘고, 그래서 더 무서워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해진 시간 안에 내가 정해놓은 목표만큼 아이들이 도달해있지 않으면 굳이 거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여유있고 친절한 모습은 아닐테니까.
그래도 아이들과 가장 마음을 많이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바로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이다. 뭔가 관계가 막혔거나 설명이 어려울 때 그걸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내겐 그림책이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그림책이 꼭 있어야 하다보니 주로 사서 가지고 있는 편이다. 경력만큼 늘어가는 건 그림책들이다.
근래 몇 년간은 6학년을 이어서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교실 책꽂이에 있는 그림책을 보며 그림책의 수준이 이렇게 높다는 것에 놀랐다거나 자기 마음을 정말 잘 위로해줬다고 할 때는 괜히 으쓱해지도 한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나보다 나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김준호선생님의 책을 읽었다. 잘 읽히는 문장이라 그냥 흐르듯 읽을까봐 경계하며 꼼꼼하게 읽었다. 저자는 나보다 교사경력이 훨씬 짧은데도 수업과 교사로서 삶의 고민을 정말 깊이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 질문과 해답의 모티브를 그림책에서 찾아 이렇게 한 편의 서사같은 책을 써냈다는 데 놀랐다. ‘너는 특별하단다’에서부터 ‘가드를 올리고’ 까지 이어지는 18개의 목차는 저자의 고민과 성장이 점차 깊어져가는 과정이었다. 그림책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이 특정 그림책을 보고 자기 삶의 어떤 부분과 연결하거나 어떤 주제에 맞춰 그림책을 소개하는 방식인 것과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림책에 대한 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점점 진정한 교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보는 책이라고 여기지 말고 삶에 대한 책으로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담임 교체를 생각할만큼 소통에 서툴렀던 교사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며 방법을 찾다가 토론을 만나고,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 그것으로 한 아이의 삶이 변하고 한 학급이 변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이제 그 과정이 바탕이 되어 저자는 꾸준히 동료들과 함께 토론과 회복적 생활교육에 관련된 책들을 내고 그것들과 그림책을 연결지어 그림책 토론책을 내더니, 드디어 단독 저서로 그림책이 자신의 삶으로 다가온 책을 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정리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 책 또한 많은 그림책이 포함되어 있어 아직 못 본 그림책을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부작용이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부작용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만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빨리 만나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게 만든다는 거다. 그림책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나누기엔 정말 한계가 크다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다.
그림책에 대한 소개로도 충분히 관심이 가지만 그림책이 삶과 만날 때 그 감동은 몇 배 이상이다. 교사라는 직업이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관심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때 많은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으며 교사인 나와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이 책 속에 적절히 인용된 시와 노래 가사들도 보석같다. 김준호 선생님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하며 이번 스승의 날엔 내게 스승같은 선생님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