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그림책향 33
차은실 지음 / 향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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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맞나 싶을만큼 그림 보다는 디자인체로 쓰여진 글씨가 표지 가득하다. 파란 바탕에 부분적으로 두껍게 쓴 ‘우리 같이’ 라는 글씨는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나오려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서 보이는 21쌍의 눈과 다양한 모양의 부리들, 그리고 짝짝이 발을 가진 펭귄 한 마리. 이 22마리의 펭귄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면지를 펼치면 발 색이 다른 펭귄이 ‘나가!’라는 글자 위로 높이 솟구쳐 있다. 아무래도 무리에서 추방되는 듯 보인다. 이야기는 추방된 펭귄이 다른 펭귄 무리에 들어가자 침입자를 찾겠다는 소동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침입자를 찾는 방법에서 마음이 뜨끔해진다. 처음엔 잠수 능력으로, 그 다음엔 함께 사냥할 때 생긴 상처로, 다음은 출신지다. 그래도 침입자가 가려지지 않자 마지막으로 발 색깔을 기준으로 삼아 기어코 침입자를 찾아낸다.
그 뒤에 같은 펭귄도 아닌 다른 더 큰 침입자들과 맞딱뜨리며 펭귄들은 이런 작은 차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고 이야기는 좀 더 스펙타클하게 흘러가지만 여기까지만 봐도 우리의 민낯이 충분히 드러난다.
끊임없이 차이점을 만들어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조금이라도 내 편에 불리한 상황이 오면 언제든지 네 편을 추방시키는 우리의 모습. 처음에 양쪽 발 색이 다른 펭귄을 쫓아낸 건 누구일까? 면지 이전에 그 펭귄은 어떤 상황에서 추방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 펭귄 그룹도 발 색깔이 다르다는 걸 문제 삼은 걸까? 아니면 또다른 구별짓기가 있었을까?
판화로 찍은 듯 표현된 펭귄들의 모습(본문에서는 표지보다 더 많은 펭귄들이 나온다)은 너무도 귀엽고 지극히 소시민적으로 보이지만 집단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재빨리 자신의 위치를 재배치하는 모습이 무척 안쓰럽다. 지도자처럼 보이는 펭귄에게 왜 그런 기준을 세우냐고, 함께 갈 수도 있는데 꼭 색출해야 하냐고 묻는 펭귄은 없다. 여론몰이 뉴스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하는 우리 모습 같다.
이들이 바뀌는 건 더 큰 침입자들이 나타날 때다. 스포일러가 될테니 뒷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지금 지구에서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인가? 정말 피부색이나 능력차이, 출신지 같은게 서로를 구별지을만한 일인가? 그런 기준으로 서로를 배제시키고 편을 가를만큼 우리는 한가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 시시각각 닥쳐오는 온갖 재난과 위험 신호들 앞에서 우리의 범주는 어디까지인지, 그 우리들은 함께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당신의 우리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를 책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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