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속의 시들을 읽고 나니 우선 다가온 건 색이다. 원색으로 화려하지만 어딘가 슬픔이 깃들어 있는 색이다. 불꽃놀이 불꽃들이 사방으로 터지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면서도 그 불꽃들이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났을 때는 다시 암청색 하늘이 가만히 고요히 지키는 그런 밤이 떠오른다. 그다음으로 다가온 건 바람이다. 한 편 한 편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 한켠에서 바람이 이는 기분이 든다. 이베로아메리카 작가들이 쓴 글들이라 그런지 환상과 실제가 경계 없이 어우러져 잊고 있던 다양한 층위의 내 기억들을 떠올리게도 하고 환상적인 영상들이 지나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마구 들뜨지는 않게 하는 차분함이 함께 있어 신비롭다. 한 번 읽을땐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는 시들이 꽤 있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읽으니 시들이 다르게 보이고 나만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시들이 늘어나 훨씬 재미있게 읽혔다. 두 번 읽은 현재 이 책에 담긴 36편의 시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시를 꼽으라면 첫 번째에 나오는 표제작 <작은 성냥갑 속에는>이다. 사물들의 엄마가 되어 주고 싶어 작은것 하나까지 소중히 간직하는 마음과 그 안에 담기 추억을 가만가만 읽고 있자니 <패터슨>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버스 운전사 일을 하면서도 계속 시를 생각하고 삶을 시어로 바꿔보고자 노력하던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에게도 이 시 속에 나오는 작은 성냥갑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기억의 창고인 곳도 있고, 자료의 창고인 곳도 있고 추억을 담아둔 곳도 있다. 그런 곳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 안에다 마음 놓고 눈물 한 방울도 숨겨놓을 수 있으리라. 좋은 시들이 정말 많다. <비밀을 말해줄게>를 읽고 있으면 밤의 고요를 깨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듯 하고, <시간의 껍질 아래서>를 읽고 나면 시간이 스케이트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나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시를 보며 나비가 두 쪽짜리 비밀의 책이 될 수도 있다는 표현에 공감되고, <종달새> 시를 읽고 있으면 김수영의 <푸른 하늘> 시가 함께 떠오른다. 그 외에도 하나 하나 다시 읽으며 필사하고 싶은 시들이 많다. 원색으로 단순한 형태들을 무심히 던져 놓은 듯 그려놓은 그림이 원시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라 그림만 보고 나만의 시를 지어봐도 좋을듯 하다. 이 책에 나오는 시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이렇게 단순한 형태와 원색으로 떠오른 이미지나 느낌을 표현해 보라면 얼마나 멋진 작품들이 나올까? 형태를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자유롭고 솔직한 작품들이 나올거 같다. 이베로아메리카라는 작가군 명칭이 생소하다. 하지만 이 말에서 이미 식민과 저항과 가난과 아픔이 느껴진다. 돌 하나를 들추면 5명의 시인이 나올 거 같은 이유도 그 땅에 스민 역사와 눈물을 시와 음악과 문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리라. 어찌보면 우리나라와도 참 비슷한 정서다. <땅 속에 손을 찔러 넣으면>이라는 시에 시인은 ‘땅 아래서 녹색 칠을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렇게 메마르고 이기적인 세상에도 시가 있어 우리의 양심 안테나를 벼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러면 시를 읽어야 한다. 작은 성냥갑에 엄마 없는 사물을 모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