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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촌 - 우리의 맛을 빚는 장인들의 이야기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컬처그라퍼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명인명촌의 부제는 ‘우리의 맛을 빚는 장인들의 이야기’ 라고 되어 있는데 맛을 ‘빚는다’란 표현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마치 도자기를 빚는 장인과도 같이 맛 또한 그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을 출판한 컬처그라퍼는 책의 표지나 속지에도 책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러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다. 표지재질은 마치 한지를 연상시키는 표면과 색깔이 책의 분위기를 한껏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자칫 다가가기 어렵고 쉽지 않은 내용일수도 있는 것을 책의 사이즈를 줄이고 글씨 배열 또한 넓게 배치함으로써 부담없이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도록 한 배려를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점점 사회가 발전할수록 ‘본질’이 잊혀져가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범람하는 매스컴과 화려함으로만 얼룩지어진 사회분위기에 점점 잊혀져가는 본질이, 이제는 뭔지 자각도 안되는 요즘 세상에 ‘형식’적인 것만이 남은 거 같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 이 시기에, “명인명촌”은 우리에게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주고, 각자마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지 말고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의 맛이라고 해서 푸짐하고 화려한 음식을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그러한 생각이 부끄러울만큼 이 책에 나오는 종류는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장, 된장, 식초, 꿀, 기름 등이다. 장으로 간을 하고 발효음식이 상대적으로 많은 한국음식 어디에나 들어가는 것들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명인’분들은 1년 내내 이것만을 위해 10년, 20년도 넘게 노력해오신 분들이다. 그동안 겪은 어려움들과 괴로움들을 모두 이겨내고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는 과정들을 통해 그들은 “명인”이 되었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꿋꿋히 해내는 모습들은 자칫 어리석어 보일수도 있지만 그 어리석은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실은 어리석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면서, “명인”들은 본질을 잃지 않고 그 본질이 훼손되지 않게 그들 나름대로의 고집도 있지만 때로는 ‘유연성’도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된장을 만들때 햇빛을 잘 쐬야하지만 비는 맞으면 안되는데 그 많은 장독대 뚜껑을 그때마다 열고닫기가 쉽지 않아 유리뚜껑으로 바꿔서 효율성을 높였다는 부분에서, “본질”만 알고 있으면 그것을 실행하는데에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답’은 없다, ‘명답’만이 있을 뿐.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정답’만을 강조하며 그리고 남에게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어떤 식재료든 사람에게 온전히 자기 전체를 다 내줘요. 그런데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게 사람의 한계예요. 그 미안함 때문에 좋은 요리를 하게 되거든요. 재료가 가장 그 재료다울 수 있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제 신조에요.” ‘식초명인’ 김순양 씨의 말이다. 한낱 재료에도 예의를 표하고 ‘재료다운’ 음식을 만든다는 그녀의 철학은 매우 건강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기다림을 품은 맛, 사람을 생각하는 정성을 담은 맛, 그것이 바로 건강한 맛이라고 저자는 기록했다. 그리고 그 건강한 맛은 바로 기다림에서 온다고 했다.
책에 소개되어진 ‘명인’들의 공통된 키워드는 ‘기다림’이다. 누구하나 재료든, 날씨든, 사람이든 보채지 않는다. ‘가공’하지 않는다. 자연에 기대어 시간에 기대어 날씨에 기대어 그저 순응하고 기다린다. 그것은 곧 건강으로 직결된다. 그걸 알고 명인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들은 ‘맛’으로 반겨준다. 이 책을 통해 본인은 마음속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뭔가 맘속의 시꺼먼 것이 쫙 씻겨내려가는 느낌을 말이다.
패스트푸드와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한줄기 소나기와 같은 시원한 감동을 선사하는 “명인명촌”을 통해, 많은 분들이 맘속의 시커먼 것들이 씻겨내려가는 시원한 감동을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