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척 전문가
정예인 지음 / 행복우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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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여행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고 고백해요. 어른으로 살아가 는 삶이 결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아무렇지 않도 록 단련하고 싶어 여행을 반복하나 봅니다.

저에게도 '제대로 된 어른'으로 살고자 하는 노력 하는 노력은 부담 되는 일입니다. 몰랐다면 좋았을 것들도 많고, 모순이 하나둘씩 늘어 가는 일이 때론 슬프거든요.

📒책 속 마음에 닿는 글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여행 중이었다. 피레우스 항구로 향하던 오늘 아침, 가슴이 두근거렸고, 지중해 바람에 실려 온 상쾌한 바다 냄새가 좋았으며, 갑판 위에서 마신 뜨거운 커피가 맛있었다. 배가 출항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 시간이 멈춘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도 여행이다. 어쩌면 그리스의 바다를 꿈꿀 때부터 나는 항해 중이었 는지도 모른다.

서울살이가 길어지면 나는 폴레간드로스섬을 떠올린다.
빌딩 사이에 내 삶을 끼워 맞추느라 갈아내고 도려낸 잔해를 쓸고 갈 파도가 필요하다. 건물 벽을 칠할 때, 흰색과 파란색 페인트만 있으 면 되는 사람들. 별은 별이고 바다는 바다인 곳. 오늘을 살아내기에 필요한 건 끼니와 포도주, 나귀의 먹이 뿐이면 되는 삶. 단순함의 미학을 가르쳐준 그리스가 그리워졌다는 건, 마음이 복잡하다는 뜻일 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는 눈을 감고 그 섬의 파도 소리를 듣는다.

프랑스를 혼자 여행하며 수 많은 '척'을 했다. 그들에게 섞여 즐 거운 척, 짜디 짠 파스타가 맛있는 척,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척, 속은 천불이 나는데 괜찮은 척, 그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웃는 척, 말을 잘 알아들은 척...

내가 돌아갈 곳에는 푹 고아 낸 사랑이 있다. 별자리를 보고 방향 을 찾듯, 나는 그 사랑을 향해 걸어간다. 돌고 돌아, 결국 집으로 돌 아간다.

해변은 흰 조약돌로 가득하다. 고운 모래가 되려면 멀었다. 센 파도를 안주 삼아 와인을 병째 마신다. 머리카락에 짠 내가 배어 진득 해지면 집으로 돌아간다. 따듯한 물로 바닷바람을 씻어내고 토마토 파스타를 해 먹으며 와인 한 병을 마저 비우면 나의 하루도 끝이다.
여유는 사람을 녹인다.

현실은 늘 하나뿐이지만, 운명은 여러 개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 간 운명의 끝에는 늘 현실이라는 벽이 존재하는 게 문제지만.

호수는 늘 그 자리에 멈춰 있다. 조용한 순환이 이루어질 뿐이다.
끝이 없는 바다나 흘러흘러 어딘가에 도달하는 강과 달리 호수는 가만히 있다.

마침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쉬었고 두 뺨으로 바람을 느꼈다. 외로웠던 내게 손을 내민 건 와인 농장 한구석, 마리 보르 언덕이었다.

낭만이란 불편하고 귀찮고 의미 없지만 마음이 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불안이 내 인생의 유속을 재촉할 때 나를 버티게 한 힘은 낭만에서 나왔다.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책을 읽는 것, 비 오는 날 대뜸 밖 으로 나가 뛰어보는 것, 목적지도 모르는 기차에 타 종점에 내려보는 것, 핸드폰 없이 지도만 보고 여행해 보는 것.

"나는 끝없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내가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어. 이제 뭐가 좋고 나쁜 건지 알 수 없어.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내가 왜 여기에 있지?"

☘️ 오늘 책을 읽고 두근대는 심장을 추스르기 힘들었어요.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앞 데크 끝자락에서 찍었던 가족사진, 크 로아티아 플리트비체 호수의 코발트빛 풍경, 할슈트타트 호수에서 비내리던 날 마셨던 커피 한 잔이 떠올랐거든요.

☘️ 저자가 알려준 좌표 46°23'44.4"N 14°06'21.3E 를 슬쩍 메 모해두었습니다. 푸른 잎이 내는 파도 소리가 듣고 싶거나, 지저귀는 새의 선율과 발걸음을 맞춰볼거에요. 땅 속 흙의 풍미도 느끼고요.

☘️저자가 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전문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싶어요. 슬프게 먼저 떠난 친구와 스물한 살에 설렜던 사랑을 마음이 품고도 아무렇지 않도록요.

☘️참! 저도 사람들 대부분이 '트리에지떼'에 갈 때, '이졸라'에 갔어요. 여행은 우리를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느끼게 해주어요. 그저 피어있는 동안 행복할 수 있도록요.

#하하맘과 단단한맘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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