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원씨를 아시나요? 아마 판다 신드롬이 불었던 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일 겁니다. 저는 동물을 아주 좋아하지만 어쩐지 푸바오보다는 판다 할부지 강철원씨의 인상이 마음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선한 눈매, 다정한 말투만으로도 푸바오와 동물원의 동식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거든요.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 모친상을 당하셨음에도 의연히 푸바오의 할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셨던 부분은 가슴 깊이 남아있어요.
이 책도 제가 상상한 판다할부지 강철원씨와 닮아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문체가 따뜻하고 섬세해서 줄곧 글을 쓰셨던 분인가 싶을 정도였어요. 이 책은 판다나 에버랜드 스토리가 아니라 강철원님의 텃밭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서, 저처럼 식물을 사랑하는 식집사분들께 한 권씩 선물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어머니는 원래 욕심이 없으신 분이었는데, 맷돌 호박한테는 과한 애정을 보이시며 거름 욕심을 내시곤 하셨다.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고 계셨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맷돌 호박을 심을 자리에 거름을 잔뜩 가져다 두셨다 [중략] 이렇게 무심한 듯 서로를 챙기는 어머니, 아버지의 손길을 통해 맷돌 호박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P 33
학교가 끝나면 꼴을 베어야 하고, 아버지가 안 계실 때에는 구황작물로 식사를 대신해야 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어린 작가님 눈에 느껴졌던 사랑. 그런 사랑을 느끼면서 자랐기에 동물들의 멋진 할아버지가 될 수 있었겠죠.
내친김에 태양초를 만들어 보겠다고 고추를 널어놓은 채반을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보았다.
P41
태양초고추라는 건 태양에 말려서 만드는 거구나. 새로 깨달은 지식.
난 아주 어릴 때부터 가지를 먹었다. 익힌 가지가 아닌 생가지를 말이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밭에 가지를 따러 갈 때는 으레 한두 개 정도는 생으로 뚝딱 먹어치웠다.
P44
나만 생가지 먹었던 게 아니구나. 우리 집도 어릴 때는 주택에 살았기 때문에 항상 부모님이 마당에 가지를 심곤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와 손잡고 내복 바지를 벅벅 긁으며 걸어가 쪼그려 앉아 사이좋게 생가지를 간식 삼아 먹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배 아프다고 먹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때 먹었던 가지의 맛은 마시멜로보다 더 푹신하고 달콤해서 중독적인 맛이었어요. 지금은 먹지 않지만 금세 그 식감과 달큼함이 생각날 정도로요. 기억 속에 살짝 잊혔던 추억이 떠올라서 괜스레 뭉클해졌던 부분. 방금 수확한 생가지 진짜 맛있죠.
하루는 밭일을 잠시 내려놓고 [중략] 이미 고라니는 내 맘속에서 텃밭의 침략자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작물이 좀 망쳐진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옹졸한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 반성했다. 고라니 입장에서 생각하면 텃밭은 맛있는 먹이들이 한데 모여있는 뷔페식당 같은 곳인데, 본능에 이끌리어 내려오는 건 당연했다.
P166
몇 년 전 주말농장을 하면서 이것저것 농사에 손을 대본 경험이 있는데, 작물에 꽤 여러 동식물이 찾아왔어요. 도심 속 주말농장이라 고라니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이름 모를 여러 곤충의 애벌레와 벌과 나비가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도대체 이 큰 도심에 어디에서 온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차피 취미로 하는 거 그냥 마음껏 뜯어먹고 가라는 생각으로 그냥 두었던 기억이 나는데 덕분에 우리는 못생긴 농작물을 먹었지만, 오히려 싱싱하고 건강한 느낌이라 벌레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텃밭 에세이이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동물과 자연에 대한 사랑,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 친구와 사람에 대한 사랑.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며칠 만에 후루룩 읽었을 정도로 좋았어요. 또한 작물 하나하나를 한 해 한 해 더 크고 먹음직스럽게 키워나가는 과정이 담백하고 다정한 문체로 적혀있어 읽는 재미가 컸답니다. 판다할부지, 아니 강철원 작가님의 다음 책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