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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간 - 사랑이라는 이름의 미스터리 일곱 편 ㅣ 나비클럽 소설선
한새마.김재희.류성희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7월
평점 :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봄이길 바랐다. 풀내음 가득한 산길을 걸으면 평생 함께 걷고픈 소망이 생길 것 같았다. 봄이 아닌 가을에 만나도 좋을 거였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져도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도 외롭지 않을 테니까. 봄이나 가을이 아닌 겨울도 나쁘지 않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꼼짝 할 수 없어도 온기를 나눠주는 이가 옆에 있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은, 여름에는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여름은 혼자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계절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날 안거나 바짝 붙어 있다면 호의보다는 살의를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계절과 달리 여름은 사랑하기보다 미워하는 일이 훨씬 쉬운 이기적인 계절이다.
나비클럽에서 펴낸 ‘여름의 시간’은 그렇게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한 여름날의 연인들 이야기 일곱 편을 싣고 있다.
한새마의 ‘여름의 시간’은 돌아온 첫사랑 때문에 가정에 균열이 가고 살인사건이 벌어진 상황을 현재에서 첫 사건이 발생한 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백으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결구에 드러난 반전이 충격적이다. 아마 작품을 읽고 나면, “사실은, 저였죠? 그 여자가 아니고요.”라고 하는 말을 절로 되새기게 될 것이다.
김재희의 ‘웨딩 증후군’은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여성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완벽한 데, 성적 취향을 절대 맞추지 못할 것 같은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지만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류성희의 ‘튤립과 꽃삽, 접힌 우산’은 유년 시절에 당한 학대가 성인이 된 후 어떻게 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 추리 소설에서 드물지 않게 다루는 소재지만,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세심하게 묘사돼 많은 공감을 샀다.
홍선주의 ‘능소화가 피는 집’은 의처증에 걸린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능소화의 꽃말은 ‘여자’이다.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능소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 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사마란의 ‘망자의 함’은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심장을 꽁꽁 숨겨 넣은 괴물처럼, 사랑의 상처를 털기 위해 망자의 함에 과거를 담고 잊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가 서글프게 다가왔다. 다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망자의 함에 꽁꽁 숨겨두고 완전히 잊어버린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서 덜컥 열려버린 망자의 함을 보게 되면 어떤 심정일까?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에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이었다.
황세연의 ‘환상의 목소리’에는 주인공이 싫어하는 모든 정적을 제거해주는 스토커가 나온다. 사랑의 가장 잘못된 형태 중 하나가 스토킹이다. 목숨을 사리지 않는 집착의 광기와 마주했을 때 사랑받아 행복하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누구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지만, 그 한사람에게만 절대 사랑받고 싶지 않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홍성호의 ‘언제나 당신 곁에’ 또한 잘못된 사랑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갖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그럼에도 떠나려는 사람을 끝까지 붙들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사랑이란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전부를 이해하기엔 너무 두려운 현실이다.
여름만큼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없다. 에메랄드 빛 바다, 푸르른 하늘. 한껏 부풀어 오른 초록 잎사귀들과 울긋불긋한 열매들과 이글거리는 황금빛 태양 아래 걸린 새하얀 수건들. 일곱 명의 작가가 펴낸 ‘여름의 시간’은 그 다양한 여름의 빛깔을 담고 있다. 피서지에서 또는 집에서 언제 펼쳐도 가장 여름다운 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