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형사들 - 사라진 기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정명섭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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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했던 사극 중에 암행어사가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악행을 저지르는 탐관오리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치면, 허름한 복장의 비렁뱅이는 사라지고 위풍당당한 해결사가 짠 나타나는 모습이 어린 나를 매혹시켰다. 특히 암행어사 박문수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는 갑봉이는 근엄하고 매사에 진지한 박문수 옆에서 수다스럽고 실수투성이지만 정이 많아 매번 나를 울리고 웃겼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만난 콤비 중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정명섭 작가의 조선의 형사들에는 박문수와 갑봉이 콤비를 떠올리게 하는 좌우포청 군관들이 나온다. 우포청 육중창은 기골이 장대하고 말이 없고 무술에 능한 반면, 좌포청 이종원은 날렵하고 말이 많고 무예는 육중창보다 떨어지지만 추리력이 뛰어나다. 평소엔 앙숙 관계에 있는 두 포청의 군관이지만, 정조의 어머니 영빈마마의 위패를 모신 의열당 기와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해 둘은 공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와 도둑을 잡기 위해 앙숙인 두 포청이 티격태격하며 사건 현장을 뒤져 잡아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벌거벗은 여인의 시체가 등장하고, 용의자들이 모두 사망해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져버린다. 대체 왜 궁궐의 기와를 훔쳤고, 누가 여인을 죽인 것인지.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건 사고와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범인을 추격하느라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보통 팩션이라면 낯선 고어와 느린 전개를 예상했는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사건 전개와 앉은 자리에서 완독하게 만드는 가독성은 분명 정명섭 작가의 뛰어난 필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사람이 법보다 위에 있다는 메시지였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조선 최고의 해결사로 기억되는 이유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서민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해서였다. ‘조선의 형사들도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법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내용이라 이종원과 육중창 같은 법 집행관이 실제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 둘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명콤비를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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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1.가을호 - 71호
계간 미스터리 편집부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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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스터리 리부트를 주제로 출간한 계간 미스터리 2021 가을호를 펼치면서 추리소설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학급문고 구석에서 그림 한 장 없이 작은 활자가 빽빽하게 박힌 두툼한 표지를 꺼내 든 건, 글 좀 읽는다고 칭찬받는 아이의 치기어린 도전이었다. 그렇게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를 만났다. 그들 덕분에 이성과의 만남을 꿈꿔야 할 사춘기를 미스터리한 죽음 속에서 보냈다.

 

미스터리는 도저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일이나 사건, 또는 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를 주된 내용으로 하며 그 사건을 추리하여 해결하는 과정에 흥미의 중점을 두는 소설을 말한다. 하지만, 계간 미스터리를 읽으면서 나는 미스터리의 세계란 우주의 블랙홀 만큼이나 광범위하고 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인상을 받은 박소해 작가의 꽃산담같은 범죄수사물과 이은영 작가의 졸린 여자의 쇼크같은 심리 스릴러물을 비롯해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사회파추리단편들과 뒤통수를 서늘하게 만드는 트릭을 활용한 단편은 물론 두 페이지 분량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을 보여주는 미니픽션들은 어릴 때 최고의 선물이라 여겼던 종합선물보따리를 받은 듯 알차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미스터리 문학이 무엇인지, 미스터리 문학의 원론을 고민하게 만드는 박인성 평론가님의 글과 배꼽티 입은 여성의 모습에서 무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공원국 작가님의 연재는 미스터리 문학을 깊게 바라보게 만들어 다음 화를 기대하게 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한새마 작가님의 세 개의 방은 문학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절절하게 고민하고 써야 하는 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어느 한 부분 버릴 것 없이 단밤처럼 속이 꽉 여문 계간 미스터리 가을호였다. 잡지를 읽은 여운이 가으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장르문학을 읽고 쓰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특별 대담 말미를 장식한 열정의 문구에 큰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는 장르문학을 폄훼하고, 누군가는 같은 곳에서 가능성을 본다.

누군가는 한국 미스터리가 죽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잿더미 속에서 꿈틀대는 날갯짓을 본다.

이미 한국추리문학의 리부트는 시작됐다.

당신들이 인정하든, 알량한 자존심을 부여잡고 고개를 젓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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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간 - 사랑이라는 이름의 미스터리 일곱 편 나비클럽 소설선
한새마.김재희.류성희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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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봄이길 바랐다. 풀내음 가득한 산길을 걸으면 평생 함께 걷고픈 소망이 생길 것 같았다. 봄이 아닌 가을에 만나도 좋을 거였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져도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도 외롭지 않을 테니까. 봄이나 가을이 아닌 겨울도 나쁘지 않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꼼짝 할 수 없어도 온기를 나눠주는 이가 옆에 있다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은, 여름에는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여름은 혼자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 계절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날 안거나 바짝 붙어 있다면 호의보다는 살의를 느끼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계절과 달리 여름은 사랑하기보다 미워하는 일이 훨씬 쉬운 이기적인 계절이다.

 

나비클럽에서 펴낸 여름의 시간은 그렇게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한 여름날의 연인들 이야기 일곱 편을 싣고 있다.

한새마의 여름의 시간은 돌아온 첫사랑 때문에 가정에 균열이 가고 살인사건이 벌어진 상황을 현재에서 첫 사건이 발생한 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백으로 되어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결구에 드러난 반전이 충격적이다. 아마 작품을 읽고 나면, “사실은, 저였죠? 그 여자가 아니고요.”라고 하는 말을 절로 되새기게 될 것이다.

김재희의 웨딩 증후군은 독특한 성적 취향을 가진 여성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완벽한 데, 성적 취향을 절대 맞추지 못할 것 같은 상대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지만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류성희의 튤립과 꽃삽, 접힌 우산은 유년 시절에 당한 학대가 성인이 된 후 어떻게 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 추리 소설에서 드물지 않게 다루는 소재지만,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세심하게 묘사돼 많은 공감을 샀다.

홍선주의 능소화가 피는 집은 의처증에 걸린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능소화의 꽃말은 여자이다.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능소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 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사마란의 망자의 함은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심장을 꽁꽁 숨겨 넣은 괴물처럼, 사랑의 상처를 털기 위해 망자의 함에 과거를 담고 잊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가 서글프게 다가왔다. 다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망자의 함에 꽁꽁 숨겨두고 완전히 잊어버린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서 덜컥 열려버린 망자의 함을 보게 되면 어떤 심정일까?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에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이었다.

황세연의 환상의 목소리에는 주인공이 싫어하는 모든 정적을 제거해주는 스토커가 나온다. 사랑의 가장 잘못된 형태 중 하나가 스토킹이다. 목숨을 사리지 않는 집착의 광기와 마주했을 때 사랑받아 행복하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누구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지만, 그 한사람에게만 절대 사랑받고 싶지 않은 심정이 아닐까 싶다.

홍성호의 언제나 당신 곁에또한 잘못된 사랑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갖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그럼에도 떠나려는 사람을 끝까지 붙들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걸까? 사랑이란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전부를 이해하기엔 너무 두려운 현실이다.

 

여름만큼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계절이 없다. 에메랄드 빛 바다, 푸르른 하늘. 한껏 부풀어 오른 초록 잎사귀들과 울긋불긋한 열매들과 이글거리는 황금빛 태양 아래 걸린 새하얀 수건들. 일곱 명의 작가가 펴낸 여름의 시간은 그 다양한 여름의 빛깔을 담고 있다. 피서지에서 또는 집에서 언제 펼쳐도 가장 여름다운 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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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서클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5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희경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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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서클 살인사건

 

 커다란 진홍색 원이 찍힌 편지를 받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죽었다. 경찰이 주변을 겹겹이 포위하고, 총을 여러 대 갖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진홍색 원은 한 번 찍은 표적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1900년대 런던 시내를 공포로 몰아넣은 진홍색 원은 크림슨서클에서 보내는 살인 예고장이다. 누구도 실체를 알지 못하는, 심지어 같은 크림슨 서클 회원끼리도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게 철저히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크림슨서클은 부자들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하는 범죄조직이다. 그들은 특히 돈을 보내지 않은 부자들을 모두 잔인하게 살해해 악명이 높았다.

 

런던 재벌 중 한 명인 제임스 비어드보어는 크림슨 서클의 경고장을 받지만, 협박에 굴하지 않고 사이코메트리 탐정 데릭 예일을 초대해 대항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그의 아들인 잭 비어드 모어와 파르 경감은 데릭 예일 탐정과 함께 제임스를 살해한 크림슨 서클을 추격한다. 며칠 뒤 용의자 시블리를 체포해 크림슨서클의 정체를 심문하는 데, 갑자기 시블리가 심문실에서 독살된다. 게다가 사건 당시 제임르 비어드모어 집을 방문했던 펠릭스 말마저 절묘한 수법으로 살해된다. 특히 펠릭스 말은 수많은 경찰이 감시하고 있던 밀실 상태의 침실에서 비눗방울을 이용한 독가스로 살해돼 모두를 놀라게 만든다.

 

신출귀몰한 크림슨서클의 범행 수법에 번번이 당하면서도 잭은 사모하는 탈리아를 위해 파르 경감, 예일 탐정과 함께 크림슨서클을 계속 추격한다. 잭이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사랑하는 탈리아의 정체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안개에 싸여 있는 데, 그녀가 크림슨서클의 지령을 받고 방문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살인이 벌어졌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살인이 일어나고 희생자가 늘면서 조금씩 크림슨서클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크림슨서클은 프랑스에서 탈출한 범죄자 라이트먼으로, 그는 여러 명을 살해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처형대 고장으로 목숨을 구한 뒤 교도소를 탈출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목에 핏빛처럼 붉은 원이 그려져 있어 레드 서클이라 불렸다. 크림슨 서클은 그 레드 서클이 런던에서 새로 만든 범죄조직이었다. 그렇다면 신출귀몰하고 잔인한 범행으로 런던 시내를 두려움에 떨게 한 크림슨서클의 수장 레드 서클은 과연 누구일까?

 

결말에서 알게 된 레드 서클의 정체는 내가 가장 의심하지 않았던 인물 중 한명이었다. 나름 추리소설 광이라 자부하며 작가가 여기저기 설치한 트릭을 추리하며 범인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레드 서클의 정체에 깜짝 놀랐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결말에서 마주하게 되는 두 인물의 반전이, 작가 에드거 월리스가 얼마나 치밀하고 영리한 추리소설가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사실 요즘 나오는 현대추리물에 비해 고전추리물은 수식이 복잡하고 전개가 느린 편이라 이 책을 선택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다 작가가 킹콩의 원작자라는 말에 더 고민 않고 집어 들었다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어린 시절 킹콩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더불어 앞서 발표된 에드거 월리스의 미스터리 컬렉션을 하나씩 완독하고 싶어졌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올여름을 정말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떤 이들은 치열하게 살며 치열하게 고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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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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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버드 스트라이크는 하늘을 날다 사막에 불시착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도시에서 군산업체를 경영하는 유한은 시험비행을 하다 비행기 사고를 당해 사막에 떨어졌다. 부상을 당해 생사의 기로에 놓인 그의 앞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 몸이 작은 대신 그 몸의 곱절에 이르는 날개를 펼친 사람. 익인(翼人)이었다. 한눈에 호감을 느낀 둘은 사랑에 빠지고 비오를 낳았다. 익인과 도시인의 피를 절반씩 받은 비오는 다른 익인보다 작은 날개, 도시인보다 작은 체구로 성장했다. 익인인 어머니와 도시인인 아버지가 함께 살 수 없었듯 그는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어디에도 맞지 않았다.

 

인간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고원에서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고 다친 동물을 치유하며 사는 익인과 달리 도시인들은 익인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선조들의 무덤까지 파헤쳤다. 심지어 하늘을 나는 익인의 능력을 뺏으려 실험도구로 이용하려고까지 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할 경지에 이른 익인들이 도시로 찾아와 항의를 하다 비오가 체포됐다. 도시에 감금된 비오는 그곳에서 루를 처음 만난다. 도시를 총괄하는 시행과 수행비서의 불륜으로 태어난 루는 비오처럼 도시인의 삶에 끼지 못하는 작은 존재였다. 함께 도시를 탈출해 고원으로 간 루와 비오는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우리가, 닿아도 될까?

마주해도 괜찮을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그리 묻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비오와 루의 사랑은 익인과 도시인 사이에 쌓인 오해와 비밀을 밝히는 과정에서 점점 깊어진다. 과연 작디작은 두 사람이 순수하고 선한 익인의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도시인의 음모를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전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익인과 도시인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양면을 떠올리게 했다. 소수에게 가하는 다수의 권력과 횡포, 조금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차별과 무시, 돈과 힘이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만능주의. 도시인의 모습을 많이 닮은 우리도 분명 처음에는 익인처럼 나보다 작은 사람을 끌어안아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주는 두 팔을 가진 존재였을 것이다.

 

우리, 이제 욕심을 버리고 그때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먼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

 

비오를 사랑하지만 날개가 없는 루는 비오와 함께 갈 수 없었다. 익인을 사랑하지만 익인이 될 수는 없었다. 익인이 아니면 익인을 사랑할 수 없는 현실에서, 루는 스스로 날개를 만들었다. 날개를 탄 루는 어디든 맘대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네가 어디 있건, 어디선 날고 있든 간에 기다려 줘. 지금 곧 거기로 갈게.

 

아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어디든 날아가라. 내가 따라가면 되니까. 너무 멀리 너무 높이 날아간 까닭에 이 세상을 벗어났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격만큼 내가 쫓아갈 것이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별의 이야기를 전해준 작가를 좋아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너머의 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글을 좋아하면서 그처럼 별을 품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었다. 어느 날 그가 유성처럼 사라지고, 어른이 되면서 잠시 별을 잊고 있었다.

구병모의 버드 스트라이크의 첫 장을 읽으면서 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가 돌아올 거라 믿게 되었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슴으로 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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