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그림자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그림자 밟기

 

마옌난 <사신의 그림자>

 

예전 그림자 밟기란 놀이가 있었다. 보통 술래를 등지고 달아나는 잡기 놀이와 달리 그림자 밟기는 술래를 마주보며 뒷걸음질 쳐야 한다. 또래보다 걸음이 느렸던 나는 잡힐 것 같으면 그늘로 숨었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으면 잡히지 않으니까. 빛이 없으면 그림자는 생기지 않고, 빛이 밝고 환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는 관계다. 전편 사신의 술래잡기보다 더 어둡고 잔혹한 존재로 돌아온 사신 L과 모삼처럼...

 

L과 첫 만남에서 약혼자를 잃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겨우 살아 돌아온 모삼은 무즈선의 도움으로 미제사건을 해결하면서 과거의 아픔을 조금씩 지웠다. 그러면서도 언제 어느 순간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 L 때문에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반드시 들어맞는 불길한 예감처럼 L은 더 강하고 악랄해진 모습으로 그를 찾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두려운 사람은 감정이 없는데 머리까지 좋은 사람이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법의 울타리를 요리조리 피한다. L은 그들 중에 최고다. 그냥 L이 아니라 사신이란 말이 덧붙은 이유를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그는 살인을 즐긴다. 아니 살인을 즐기는 게 아니라 인간이 고통의 한계치에서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긴다. 그에게는 사람의 목숨이 승부를 겨루는 한낱 게임에 불과하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어느 순간에나 살인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네가 모를 뿐이야.” (299p)

 

그는 주변에 가득 찬 공기처럼, 어둠에 스며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우리 옆에 달라붙어 있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이긴다. 그리고 빛 때문에 어둠은 생긴다. 더할나위없이 영리한 L이 왜 사신이 되었는지, 그를 어둠으로 몰아간 빛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왜 모삼과 무즈선에게 끊임없이 살인게임을 주문하는지.. 잠시도 우리는 그의 마력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는 사람의 목숨과 더불어 마음까지 훔치는 유일무이한 사이코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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