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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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그리스 문학은 호메로스의 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는 글이라기 보다 노래에 가까웠다. 노래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불러 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문학이란 누군가의 고백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때, 사무치게 그리운 감정이 복받칠 때 소설이나 산문보다 시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난해 4월 런칭한 시요일은 세상에 모든 시를 하루에 한 편씩 배달해주는 어플이다. 출시하자마자 10만 독자의 선택을 받았고, 1주년이 된 지금 그 배가 넘는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1년간 독자들에게 배달된 수백편의 시 중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편을 추려 만든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바로 이 책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이다.

 

유독 이 시집에는 이별의 아픔을 담은 시가 많다. 사람의 사랑이란 만남 아니면 이별인데, 만남이 행복했던 만큼 이별은 더 큰 아픔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라 이별을 겪어본 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구절마다 통감한다.

 

그대 사랑

꽃 피는 바람에 사라졌습니다

꽃 피지 않았던들

우리 사랑 헤어졌을까요

 

[이홍섭, ‘꽃 피지 않았던들]

 

가만 보면 나는 꽤 얍삽하게 시를 좋아했다.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홀로 애태우거나 헤어져 아플 때 주로 시를 찾았다. 정작 사랑하고 있는 순간에는 시를 잊었다. 그럼에도 시는 언제나 내가 부르면 달려와 주었다. 조건없이 바라보고 위로하는 평생 친구처럼.

 

언제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넣는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사랑하고 있을 때는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끼지 못한다. 사람이란 대체로 미련한 동물이라 많은 것을 지나고 난 뒤에 깨닫곤 한다. 부모님의 고마움, 첫사랑의 소중함, 내 옆사람의 위대함을 쉽게 잊고 산다.

시요일을 만나기 전, 잠시 시를 잊고 살았다. 어린 시절, ‘잔디잔디 금잔디로 책을 익혔고, ‘홀로서기로 사춘기 열병을 지나왔으면서도 한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를 잊었다. 마치 한때 열렬히 사모한 첫사랑을 잊은 것처럼.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장석남, ‘옛 노트에서]

 

첫사랑과 헤어지고 시를 썼었다. 사랑이 끝나 더없이 휑한 심정으로 껍데기로 지내던 날, 머리맡에 놓인 노트 한 권이 없었다면 첫 이별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 때문인지 그의 이름이 희미해지는 세월이 지나도록 노트를 버리지 못했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는 우리가 그 시절에 울며 적은 노트 같다. 읽으면 아련하고, 과거를 더듬으며 가슴을 부여잡고, 괜히 울컥해져 소리 내 읽게 된다. 그러다 결국 미소 로 마무리 짓게 되는 지난 이별이야기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 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었다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올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문태준, ‘뻘 같은 그리움]

 

첫사랑과 재회하면 실망한다는 데, 시요일을 통해 다시 만난 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을 노래하는 동안 시인은 조금도 늙지 않았고,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은 여전히 푸르른 그리움이었다. 이제 그립던 첫사랑을 만났으니 오래도록 품고 있어야겠다. 책장 안에 고이 접힌 풀들이 싱그럽게 자라 올라올때까지 천천히 천천히 꿈을 꾸듯 말이다. 사랑은 혼나지 않는 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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