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모르는 아이 - 학대 그 후, 지켜진 삶의 이야기
구로카와 쇼코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감상평

이 책은 아동학대를 당한 피해 아동이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이야기와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을 취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아이를 학대하고 버리는 부모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키울 상황이 되지 않아서 아이의 손을 놓는 것일까? 아이를 하나의 소유물로 여기기에 어리니까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마음일까?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다. 내가 생각운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은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져버리는 자들을 과연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좋은 위탁가정에서 자라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 안정과 학대의 대물림의 피해는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위탁가정에서 안정된 케어를 하더라도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며,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그리워한다. 내가 근무하는 시설에서도 눈치 보는 장애인이 있다. 눈치 보는 장애인을 보면 우리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는 되지만, 못내 서운하다. 눈치 보는 장애인 대부분이 보호자가 있다. 어쩌면 ‘여기서 잘 지내야 보호자들에게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자신이 어릴 적 받지 못한 사랑 때문에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 한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아동학대는 시간이 흘려도, 정서적으로 안정되어도 회복되지 않음에 마음이 아려왔다.


아동 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이 없고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예민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에 쭈뼛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결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재촉하지도 말고 야단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까탈스러운 아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2. 인상에 남는 문구

6쪽

"의사 선생님이 걱정해 주는 아이, 관심 가져주는 특별한 아이의 엄마이고 싶었어요. 전 늘 좋은 엄마이고 싶었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에서 제 가치를 찾았어요. 열심히 간병하는 엄마라고 인정받을 때마다 큰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링거에 물을 넣어 아이의 건강을 악화시켰다. 입원 생활을 연장해야 한다. 그것이 범행 동기이다. 가오리에게는 병원이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편안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51쪽

“해리성 장애의 무시무시함은 치료해 본 경험이 없으면 모를 거예요. 예를 들어 제 환자 중에 1년 동안 2주에 1회 꼴로 진료를 본 아이가 있는데 이름표를 가리고 '선생님 이름 뭐야?'라고 물으면 몰라요. 심리 치료를 담당하는 심리 상담사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요. 지적인 문제는 전혀 없는 아이인데도 그랬어요.”


1년 동안 신뢰 관계 속에서 진료를 하는데도 그랬다. "잊어버리는 거예요. 오후에 진료를 하는데 오전 중에 뭘 했는지 말을 하지 못해요.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학대받은 아이는) 순간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학대의 결과 기억을 조각조각 자르면 살아가요.


129쪽

“시설에 있는 동안은 세끼 모두 급식이잖아요. 학교도 물론 급식이고, 시설의 식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정하게 배치된 음식을 그냥 먹을 수밖에 없죠. ‘이거 먹고 싶어’라는 자기 욕구는 하나도 반영이 안 돼요.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전달하거나 그걸 이뤄본 경험이 없어요.

(중략)

"이 아이들이 앞으로 꿈도 갖지 못하고 학습 의욕도 없이 지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죠. 자기 결정의 기쁨도 자기가 결정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반대로 잘되지 않으면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분노를 터뜨리죠.”

그들에게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고 싶다. 도모코는 아이들을 받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직접 고르는 방식으로 바꿨다.


152쪽

“다쿠미에게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어요. 무엇 하나 머리에 그려볼 수 있는 이미지가 하나도 없었던 거죠.” 초등학교 4학년이 자신의 미래로 그려볼 이미지가 하나도, 하다못해 어슴푸레한 실마리조차도 없었다. 그건 그저 살아 있기 위해 버텨왔다, 생명을 유지해왔을 뿐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삶일 터이다.


206쪽

“아스카가 특별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깊거나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단순히 내 기분을 맞춰주려던 거였어요. 사실은 남에게 주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한 아이였으니까.”


그렇게 아스카는 지금까지 어른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며 살아왔다. 예를 들어 기요코가 아무 생각 없이 “있잖아” 하고 말을 꺼내기만 해도 아스카는 깜짝 놀라 동요하며 눈동자가 흔들린다. '난 아무 짓도 안 했어'라는 무의식의 자기방어였다.


293쪽

한심하다고 한탄하면서도 사오리는 지금 비통할 정도로 계모와의 인연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 그는 세상과 이어지는 ‘의미’를 자기 손으로 찾으려 한다. 쉬이 포기하고 ‘상실’의 이야기로 덮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 열쇠가 지금의 사오리에게는 계모였다. 결단코 생모가 아니었다. '엄마'라고 절절한 마음을 담아 불렀던 유일한 존재가 계모였다. 사랑받고 의지하고 싶다고 마음속 깊이 바라던 존재로부터 사랑받고 의지하고 소중히 받아들여졌던 기억이 한 조각도 없다면 왜 태어났는지 수없이 묻게 된다. 붙잡고 매달릴 실 한 가닥 없는 세상이라면 도대체 어찌 살아가야 할까.

그래서 사람은 찾아 헤매는 것일까. 아무리 부모에게 학대를 받았다 해도 거기에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생겨나고 어두컴컴한 세상에서, 홀로 헤매는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301~302쪽

사람은 무엇을 통해 학대로 입은 손상을 회복해가는 걸까. 상처를 끌어안은 채 어른이 된 사오리의 말속에서 한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위탁 부모 앞에서 “난 죽는 게 나아!”라고 소리치며 울었다. 고독이라는 암흑의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의 따스한 기억을 가슴에 지닌 학대 피해 아동도 있다. 엄마가 다정하게 대해준 기억, 꼭 껴안아준 아스라한 기억이 한두 조각 남아 있는 아이도 있다. 아스카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던 대상에게서 '버림받았다' '날 지켜주지도 키워주지도 않았다'라는 '상실의 감정'이 마음을 깊이 후벼 팠다. 그가 지금 고독이라는 암흑을 헤매고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304쪽

희망으로 향하는 갈림길은 어디에 있을까.

한 위탁모가 명쾌하게 답한다.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없는가."

뿌리, 이는 존재의 근간이다. 신뢰하는 사람에게 둘러싸인 안심할 수 있는 장소. 그곳이 아이가 뿌리내릴 집이다.

그의 집에는 지금 3세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여섯 아이가 있다. IQ(지능지수)가 낮아서 위탁 가정에서 양육하기는 힘들다"라는 말을 들었던 네 살 남자아이가 지금은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며 국립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애는 이 집에 뿌리를 내렸어요. 뿌리를 내리면 장애도 가벼워져요. 어떤 아이는 변해요”라고 말하며 위탁모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314쪽

미유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든 그림책이 있다 주인공은 어느 무당벌레와는 달리 등에 점에 하나 더 많았다.

다른 무당벌레들은 마지막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하나 더 많은 점은 용기의 점이야.”

남들과 달라도 된다. 이것이 그림책에 담긴 미유의 메시지였다.


322쪽

존중받은 경험은 아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아이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꿔준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다카하시 홈이라는 보금자리와 가족을 얻은 지 6년, 다쿠미는 자신을 긍정하며 살 아갈 수 있게 됐다. 만약 시설의 방침대로 다카하시홈에 조치 변경되지 않았다면……. 그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상처받은 채로 미래 따위를 그려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이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