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시대에 백정들의 신분 해방 운동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백정의 신분 철폐를 위해 양반 신분을 사서 신분을 상승도 가능하였지만, 두메별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메별은 비록 딸이지만 똑똑하다. 신분 상승을 한 큰 오빠와 형평운동을 한 춘앵에게 공부를 배우며 두메별도 춘앵처럼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경성을 가기 위해 시도하지만, 아버지에게 붙잡히고 마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독자 입장에서는 두메별이 경성으로 가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소설 속에는 양민이 사는 노촌과 백정이 사는 백정촌이 나누어져 있다. 백정은 백정임을 알리기 위해 검정 치마를 입어야 하며 양민을 만나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러한 형태는 지금, 현재에도 존재한다. 마치 현재 소위 산다고 말하는 부자 아파트 주민들은 인근에 사는 아이들이 등교하기 위해 가는 길의 통로를 막고 먼 거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몰상식한 어른들과 소설에 나오는 양민과 별반 다름없다. 단지 백정이라는 타이틀만 사라졌지 여전히 사회계층이 존재하며, 갑질 하고, 갑질 당하는 부류는 있다. ‘백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권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당했다. ‘백정’이라는 단어를 여자, 장애인, 동성애자로 바꾸어본다면 소설의 등장인물과 다름없이 지금도 차별받고 있다.
부모들은 자신이 받았던 설움을 받지 않기 위해 신분을 사는 것처럼 현재에는 자녀에게 교육에 관심이 많은 것 같 다. 우리는 내 자녀에게만 집중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조건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건전한 사회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사회가 변화를 위해 애쓰는 소설 주인공 ‘두메별’처럼 깨어있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꿈꾼다.
2. 마음에 남는 글귀
13쪽
백정은 성을 가질 수 없다. 옛날부터 그랬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된 후에도 그랬다. 법으로야 괜찮다고 해도 어디 없던 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가 없다. 몇몇 백정들이 아이들에게 성을 붙여 주었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신분이 없어지기는 무슨, 제아무리 나 나라에서 백정이고 양민이고 모두가 평등하다 외쳐도 백정들은 그 평등이 어디 있는지 도통 느낄 수가 없었다.
14쪽
‘담에 내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할 일 있으면 그렇게 말해야지.
나는 백정의 딸이지만 내도 귀한 백성입니다.라고’
36~37쪽
백정촌 어른들은 다 소처럼 일했다. 어른들만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그랬다. 그래서인지 백정들은 자신이 죽여야 하는 소를 친구처럼 대했다. 소를 잡을 때면 소에게 좋은 곳으로 가라며 어설픈 염불을 외우곤 했다. 가끔 지나가는 승려가 있으면 십시일반 쌀을 모아 승리에게 염불을 부탁하기도 했다, 평생 일만 하다 죽느니 다음 생에는 그 양반으로 태어나거라. 그렇게 중얼거리는 백정들의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50쪽
바보는 그런 사람들이다. 오름 아저씨 눈치는 설설 보면서 광대를 괴롭히는 사람들,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을 재미있다고 떠드는 사람들.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을 재미있다고 떠드는 사람들. 백정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애 잘 낳겠다고 엉덩이를 쓰다듬고는 내가 기분 나빠하면 백징 가시나가 뭐, 라고 말하는 노촌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 말이다.
161쪽
백정조차 소를 죽일 때에는 기도를 하고, 소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되짚어 보고, 소와 눈을 맞춘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백정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들이 우리에게 해 온 차별조차 모른다. 우리의 눈을 보지 않는다.
165쪽
백정 가시나 주제에 그런 게 뭐 중요하나."
돌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김돌섬을 지긋이 올려다보았다.
“백정들도 지킬 건 지키지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란 거 새기십시오.”
어느새 도사에서 내려온 백정촌 어른들이 집을 빙 둘러싸고 서서 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작업에 쓰는 도구들이 들려 있었다.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안을 보는 모습에 노촌 사람들은 이미 겁에 질린 듯 서로 등을 딱 붙이고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돌을 슬며시 바닥에 내려는 사람도 있었다.
168쪽
어머니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진 않았다. 그 말은 어머니처럼은 살기 싫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깐. 나는 박성춘의 연설문을 꼬깃꼬깃 접어 가지고 다니는 어머니가 좋았다. 그걸 내게 읽어 달라고 하는, 내가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을 뿌듯해하는 어머니가 좋았다. 그렇지만 어머니처럼 내내 허리를 굽히고 땅을 보며 걸어야 하는 것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