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만나 결혼했다. 신혼 초 누구나 그렇듯이 서로 두 남녀가 만나서 맞춰 살아가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이 부부는 난임 끝에 기다리던 아이를 낳았다. 임신 중 무리하게 이사하였다. 38주 만에 조기 출산했다. 아기가 호흡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병명은 후두 연화증이었다. 아이는 점점 나빠졌고 다른 큰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 오진이었다. 아이는 ‘선천적 기관 협착’이었다. 의사에게 ‘지금 아이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4개월짜리 아이를 홀로 수술실로 들여보내는 엄마는 마음이 무너졌을 것이다. 수술하면 아이의 상태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말에 엄마는 고민했다고 한다. 그 수술을 하게 되면 아이는 목소리를 잃게 된다고 한다. 그 순간 엄마는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아이를 위해 수술을 했지만, ‘엄마’라는 말은 들을 수가 없다.
이 작가는 자신이 임신 중에 이사해서 아이가 아프게 태어났다고 자책한다. 그 마음이 평생 안고 살아갈 그 엄마에게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위로를 건네고 싶다. 아이와 잘 버텨내신 가족에게 응원을 보낸다.
지금도 아이가 가래가 차면 빼주는 작업을 해야 하고, 거친 아이의 숨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다. 그 속에서도 아이는 성장하는 모습에 행복하다고 한다. 아이가 아프고 나니 목숨 걸고 ‘남편과 싸웠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그 말이 참 와닿았다. 해외를 나가보면 내가 마음에 여유 없이 살고 있으며 작은 일에 목숨 건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순간에는 심각한 일들이 시간 지나면 별것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건강함에 일상생활에 감사함을 느끼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이 책에 나오는 아픈 아이를 보고 감사함을 느낀다는 오해를 하실까 봐 그런 의도는 아님을 말하고 싶다.
2. 마음에 남는 글귀
P. 100
아픈 아기를 낳지 않았고, 의사에게서 아기를 포기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고, 눈앞에서 내 아기를 잃게 되는 두려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이런 일들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이렇게 내 모든 걸 기꺼이 그 어떤 망설임 없이 줄 수 있는 이런 사랑을 알 수 있었을까?
P. 121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새벽 3시에 어김없이 일어나서 배고프다고 울어 대는 백설기에게 간신히 분유를 타 주고 먹이고 다시 재웠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또 석션을 해 줘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따라 같이 잠이 들지 못하고 백설기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홀렸던 것일까? 무의식이 지배하고 있던 순간이었던 것일까?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었다. 그냥 그 상황에서 탈출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탈출을 하면 이 지긋지긋한 현실이 끝이 날 거라 생각했었나 보다. 오로지 끝'이라는 단어만 떠오를 뿐, 백설기도 초콜릿도 부모님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던 바로 그때였다.
뒤에서 ‘콩콩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을 때 나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직 제대로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백설기가 뒤집고 뒤집고 뒤집고... 이렇게 굴러굴러 베란다 창문까지 와서 창을 콩콩콩 발로 차고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책은 책과 콩나무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